[성명] 평등과 연대를 향한 새로운 도약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및 2019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임하는 입장
5월 17일은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1990년 5월 17일 WHO(세계보건기구)는 질병 분류에서 동성애 항목을 삭제했고, 미국 매사추세츠주는 2004년 5월 17일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동성애는 다양한 성적 지향의 하나이며 성 소수자는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이들에 대한 차별의 폐지와 인권보장은 전 세계적으로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로 인정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러한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을 거부하고 ‘나중의 일’로 치부한다. 촛불의 힘으로 열린 19대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국민을 위한 나라’에 ‘성 소수자’는 초대받지 못한 채 배제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 인권단체의 요구와 실천이 10년 만에 재개되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에 대해 법 제정의 주체인 국회뿐만 아니라 정부조차도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년 8월에 발표된 제3차 국가 인권 정책 기본계획은 이명박 정부에서 표방했던 계획보다 더 후퇴했다. ‘국민 여론과 시민사회의 첨예한 대립이 있는 상황’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어떠한 세부적인 계획도 구체적인 절차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기본적인 노동권과 가족 구성권, 의료접근권조차 허용되지 않는 성 소수자들에게 ‘법 제도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선언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고 성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차별금지법제정은 ‘사회적 합의 후 나중에 검토’할 일이 아니라,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한다. 우리는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다시 한 번 성 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고, 이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투쟁에 함께 나설 것을 천명한다.
한편 올해는 성 소수자 억압과 탄압에 맞서 저항하며 성 소수자 운동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스톤월 항쟁’이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스톤월 항쟁을 계기로 성 소수자들은 흑인들의 공민권 운동, 전쟁 반대와 평화를 위한 투쟁 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함께 하면서 삶과 의식의 변화를 이뤄냈다.
스톤월 항쟁 50년이 되는 올해, 5월 31일과 6월 1일 양일에 걸쳐 서울핑크닷,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회째를 맞이한다. 올해는 “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 소수자들의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축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스톤월 항쟁을 통해 억압과 탄압에 맞선 저항정신이 대중적으로 퍼져나가면서 흑인, 여성, 전쟁 반대를 외치는 수많은 이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그 연대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선정을 비롯한 준비과정은 우리의 이러한 바람과는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퀴어문화축제 부스의 많은 부분을 기업과 외국 대사관이 차지하고 있고, 퀴어문화축제를 알리는 홈페이지 메인 첫 화면에서 기업스폰서쉽을 모집하는 조직위원회의 공고와 스폰서쉽, 서포팅 기업들의 로고가 게재된 모습을 봐야만 했다. 조직위원회가 자본주의적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억압과 차별을 낳는 자본주의적 구조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우려된다. 심지어 그 기업 중에는 ‘낙태 반대’ 단체를 후원하는 기업도 있고,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착취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도 포함돼 있는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들 기업에 대한 부스 선정이 취소됐지만, 미 대사관 부스가 지금도 선정된 것은 우려스럽다.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을 공공연하게 천명하고 있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며,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를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스 선정을 둘러싸고 여러 비판과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퀴어문화축제가 혐오와 차별을 없애고, 평등과 연대의 사회를 만드는 도약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퀴어문화축제는 지금 이 사회에서 억압과 차별, 혐오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연대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고, 이를 조장하는 사회구조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연대가 표출되는 저항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퀴어문화축제는 ‘이윤’을 앞세워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하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확대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평등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평등을 향한 도전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우리도 성 소수자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피억압 민중과 함께할 것이다.
2019년 5월 17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