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양보로 강도를 막을 수는 없다
- 민주노총의 노사정 회의 양보안 제출에 부쳐
“‘무엇이 필요하다’ 얘기하지 말고, ‘무엇을 내놓을까’ 분명히 얘기하라.” 지난 6월 17일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의 면담에서 들은 말이다. 채권추심자라도 된 마냥 노골적으로 ‘양보명세서’를 들고 오라고 요구한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이 발언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원포인트 노사정 회의’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어제(6월 18일) “2차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함께 바로 그 양보명세서를 들고 갔다. 골자는 노조 차원의 임금 양보 및 기금 모금 등을 바탕으로 비정규직‧영세사업장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노동자가 먼저 양보하면 저들도 압박을 느껴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철저히 비현실적인 발상일 뿐이다. 자본가단체들은 바로 이 노사정 테이블에서 ‘노조의 고통분담, 임금 삭감, 비정규직(파견) 확대, 고용 유연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자본가단체들의 요구를 베껴 와서 ‘임금 인상 자제’와 ‘파업 자제’, 그리고 임금 하락을 야기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안으로 들고나왔다. 애당초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해 휴업수당의 90%까지 지급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머지 10%조차 지불하지 못하겠다며 하청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게 지금 자본가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다.
취약 노동자 고용 안정을 위해 진정 민주노총에 필요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은 강도 앞에서 ‘이것도 가져가시오’라며 굴복하는 게 아니라, 하청노동자 착취와 수탈의 주범이었던 그 강도의 범죄자산을 환수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어야 한다. 애초부터 ‘너희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천명한 정부와 자본가단체를 상대로 ‘거래와 협상’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 950조 원 이상의 사내유보금을 축적하고 있는 재벌대기업, 100조 원 이상의 기업 지원과 40조 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쏟아부으면서도 하청노동자 해고 사태를 방치하는 정부에게, 대체 노동자가 뭘 더 양보한단 말인가?
사회변혁노동자당은 민주노총의 노사정 양보교섭 즉각 중단을 요구한다. 더불어, 지금의 위기에 대응해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국가 책임 기본 일자리 보장-공적 자금 투입 기간산업 국유화’를 요구하며 싸울 것을 제안한다.
2020년 6월 19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