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탈핵, ‘선언’을 넘어 ‘즉각 실현’을 위해 행동할 때다!
- 후쿠시마 핵사고 10년째를 맞이하며
3월 11일 오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드리마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에 이어 인류에게 핵이 가지는 위험을 강력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10년이 흘렀지만 후쿠시마 핵사고는 지금도 그 상흔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사고 당시에도 1만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천 명이 실종되었다. 현재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원자로에는 아직도 연료봉 수천 개가 남아 있으며, 원자로 안에는 핵물질 잔해가 쌓여있지만 이를 제거하는 작업은 시작도 못한 상태이다. 원자로에 지하수와 빗물이 흘러들어가면서 매일 수백 톤의 방사능오염수가 생겨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오염수를 바닷물에 방류하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쓴 돈이 40조 원이 넘고, 사고가 난 후쿠시마 지역의 부흥과 재건을 위해 투여한 돈도 400조 원 가까이 이르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도 수만 명에 이르며, 이들이 고향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개최하여 후쿠시마 핵사고 문제가 끝날 것처럼 호도하려 하고 있으며, 정부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핵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던져준 교훈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교훈에서 배우지 못하고 ‘탈원전 시늉’만 내고는 ‘탈핵’에 역행하는 행보를 내딛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주요 국정과제로 탈원전을 선언하고, 2017년에 수명이 다한 고리 1호기를 40년 만에 가동 중단시켰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2018년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을 ‘숙의민주주의’란 이름으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그 결정 책임을 떠넘기고 공론화위원회의 공사 재개 결정에 근거해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밀어붙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9년 신고리 4호기에 대해 운영허가 결정을 내렸고, 시민단체의 허가취소 소송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최종적으로 운영허가가 결정됐다. 또한 산업부는 2월 말로 예정되었던 신한울 핵발전 3, 4호기의 공사계획 인가기간을 2023년 12월까지 연장해 주었다. 사업재개를 허가한 조치는 아니라고 하지만, 신한울 3, 4호기의 운명을 차기 정권에 떠넘긴 것이다.
2020년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에 상륙하였을 때, 태풍의 영향으로 고리 3, 4호기, 신고리 1, 2호기가 잇따라 가동 정지되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은 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의 24기에 달하는 핵발전 안전대책에 쓰이는 사업비는 일본의 핵발전 1기에 쓰이는 사업비와 비슷한 상황이다. 핵발전 사고가 일어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은 사고 원인을 호도하고 ‘임기응변식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말 제기된 경주 월성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가 다량으로 누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7년 전부터 문제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에야 대책팀이 꾸려졌다. 그만큼 핵발전 사고와 방사능 유출 위험에 한국정부는 무감각하고 무대책인 상황이다.
핵발전에서 나오는 쓰레기인 ‘사용 후 핵연료’ 처리도 대책이 없다. 발전소별로 임시보관 중인 ‘사용 후 핵연료’는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처리방안도 마땅치 않다. 경주 월성 원전은 2021년, 한빛 원전은 2026년, 고리 원전은 2027년이 되면 저장시설이 꽉 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사용 후 핵연료 처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마땅한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만들어 핵폐기물 최종처분 시설 부지나 관련 기술, 주민 의견수렴 방안을 논의한다고 했지만, 울산과 울진 등 인근 지역주민이 배제된 공론화위원회를 가동하여 맥스터(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건식 저장시설) 건설을 강행한 바 있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핵발전 체제 자체를 손대지 않고 사용 후 핵연료 처리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현재 고준위 핵폐기물을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방안은 전 세계적으로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이 퇴행을 거듭하면서 핵산업계와 보수정치세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전 사회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핵발전이 기후위기의 대안이라는 허황된 주장마저 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신한울 3, 4호기의 조속한 건설 재개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핵발전은 핵산업으로 이득을 보는 대기업, 관료, 일부 정치세력 등 소위 ‘핵마피아’에게만 이득을 안겨준다. 핵발전소 주위의 주민들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노동자민중은 방사능의 위협, 핵사고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피해만 입을 뿐이다.
핵사고와 방사능, 핵폐기물로부터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탈핵’은 인류의 시대적 과제이자 요구이다. 이제는 ‘선언’을 넘어서서, ‘탈핵’을 실현하는 행동에 돌입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명과 환경을 에너지 자본의 이윤에 팔아넘기는 현 사회구조를 생태적·반자본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2021년 3월 11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