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이재용 1심 선고, 재벌들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다
- 재벌의 뇌물범죄, 엄중처벌과 범죄수익 환수가 필요하다
법원이 이재용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지난 수십 년간 부정부패와 조세포탈, 경영세습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단 한 번의 실형도 살지 않았던 삼성 총수일가 역사상 처음이다. 그만큼 지난 촛불항쟁을 거치며 재벌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 커졌고 보수적인 사법부조차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재판부는 이재용의 경영세습 과정에서 삼성이 정권의 도움을 얻기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는 핵심 범죄사실을 인정했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밀착을 사건의 본질로 명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재용의 범죄가담 정도가 크다면서도 애초 특검이 구형한 12년보다 턱없이 적은 5년으로 형을 낮췄다. 벌써부터 2심에서 추가 감형과 집행유예로 결국 이재용이 풀려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판부는 삼성이 뇌물의 대가로 부당하게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증거가 없으며, 이재용의 지배력 확보를 위한 삼성 지배구조개편이 그룹과 계열사에도 이익이었다며 형을 낮췄다. 이미 국민연금 관련 재판에서 정권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국민연금을 동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한 사실이 밝혀져 유죄 판결이 났다. 이런데도 삼성이 누린 부당한 이득이 없단 말인가? 불법을 저질러도 기업에 이익이 되었으니 형을 낮춰준다는 것 또한 해괴한 논리다. 이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기업범죄들 역시 그 기업에 이익이 된 것만 입증하면 처벌수위를 낮춰준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제공한 출연금을 뇌물로 볼 수 없다며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들에도 면죄부를 줬다. 국정농단사태의 발단이자 핵심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재벌들이 8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바친 것이었다. 재판부는 승마지원이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 삼성이 자금을 지원한 다른 건들에 대해서는 이재용이 직접 관여했고 박근혜-최순실의 공모관계와 사익추구 목적까지 알고 있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유독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해서는 사익추구 수단임을 인정하면서도 204억 원에 달하는 삼성의 출연금은 뇌물이 아니라는 모순적인 판결을 내렸다. 두 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인정하는 순간, 자금을 제공한 다른 재벌들 역시 뇌물 범죄자가 된다. 결국 범죄의 핵심인 재단출연금을 무죄로 판결하면서 그간 기소조차 없던 재벌들은 아예 완전한 사면을 받은 셈이다.
유죄판결이 났지만 여전히 저들은 뻔뻔하다. 삼성 변호인단은 범죄행위 일체를 부정하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고, 판결 직후 경총은 경제위축을 거론하며 위협 섞인 반응을 내놓았다. 경제지와 보수언론은 학계와 법조계의 이름을 빌려 일제히 과도하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국정농단 국회청문회에 불려나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경제위기를 빌미로 그들은 ‘여론재판 하지 말라’며 도리어 훈계하고 있다. 우리는 광장에서 국정농단의 몸통이 재벌이라고 외쳤다. 재벌범죄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범죄수익의 환수가 없다면 재벌들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정치권력과 결탁할 것이다. 뇌물범죄의 핵심인 재단출연금에 면죄부를 주고, 가능한 최대범위로 형을 줄여준 이번 판결은 납득할 수 없다. 얼마 후면 촛불 1주년이 다가온다. 항쟁의 정신을 기억하면서, 여전히 해결의 기미도 없는 재벌적폐 청산을 위해 다시 싸움을 준비해야 할 때다.
2017년 8월 25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