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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과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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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주주혁명’이어야 하는가? ‘내 삶을 바꾸는 혁명’이어야 하는가?

- 대한항공·한진칼 주주총회에 부쳐



3월 27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 대표이사 재선임에 실패했다. 처음으로 재벌 회장이 주총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대한항공 직원연대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조양호 퇴진 투쟁과 한진그룹 일가의 온갖 범죄와 갑질에 대한 전국민적 분노가 국민연금의 재선임 반대 결정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른바 ‘오너 리스크’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을 우려한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운동이 결합했다. 조양호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실패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재벌 총수의 힘도 작은 힘들을 모아나가면 꺾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틀 후 조양호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승리했다. 조양호는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을 통해 대한항공, 한진 등 계열사들을 지배해왔는데, 3월 29일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완승한 것이다. 조양호의 측근인 석태수 대표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통과됐고, 국민연금이 제안한 '이사 자격 강화' 정관 변경안(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은 부결됐다. 결국 조양호는 한진칼을 통해 한진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정리해보자. 조양호가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에서는 쫓겨났지만, 조양호의 아들인 조원태는 여전히 대표이사직에 남아 있고 이사회도 모두 친 조양호 세력들이어서, 대한항공에서 그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양호는 한진그룹 총수 자리도 그대로 유지한다. 즉 대한항공 주총은 조양호에게 한 방을 날렸지만, 조양호 일족의 한진그룹 지배구조를 뒤흔들고 뿌리 뽑는 결정적 한 방은 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대한항공 주총에 대해 “자본주의 시장의 촛불혁명”이니 “주주혁명”이니 호명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섣부르다. 주주의결권으로는 재벌지배구조를 청산하기에 턱없이 부족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험하기까지 하다. 재벌체제 청산의 대안이 마치 ‘주주자본주의(주주행동주의)’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주주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주주가 의결권을 활용해 주주에게 최대의 배당을 안겨주는 투자수익 극대화를 노려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다. 경영 투명성과 함께, 노동자 대량해고를 유발하는 것은 투자수익 극대화를 위한 주주자본주의의 대표적인 행동양식이다. 이번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총에서 외국계 투자자본, 행동주의 사모펀드가 조양호의 지배에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양호 일족의 온갖 갑질과 범죄가 기업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본 것이다. 실제 대한항공 주총 이후 대한항공 주가는 크게 상승했다.


대한항공 주총 이후 소액주주 권리 강화와 같은 주주자본주의 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를 주물럭거리며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빨아먹는 재벌체제를 청산하는 길은 “자본주의 시장의 촛불혁명”이나 “주주혁명”을 통해서는 온전히 이뤄질 수 없다. 박근혜 퇴진 투쟁 때 외쳤던 것처럼 “내 삶을 바꾸는 촛불혁명”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즉, 재벌총수의 경영일선 퇴진은 노동자 민중의 삶이 바뀌는 것과 연결되지 않는 한 큰 의미가 없다.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가 물러나도 그 아들과 측근이 계속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면 뭐가 달라지는가? 조양호 일족의 한진그룹 지배구조는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설사 조양호 일족을 경영 일선에서 완전 퇴진시킨다 해도, 주식배당금 높이기가 목적인 주주 행동주의가 어찌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기업으로 그 기업을 재탄생시킬 수 있겠는가? 이번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의 이사 연임에 반대한 주주들이 기업가치 훼손과 주식 가치 하락을 걱정한 것이지, 조양호 일족의 노동조합 탄압은 문제 삼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주주혁명”론은 경영권에 대해서는 주주들만이 개입할 수 있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논리를 갖고 있다. 대한항공은 대한항공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성장했고, 정부의 온갖 특혜로 성장한 기업이다. 그런데 왜 주주들만 기업 경영에 개입할 권리를 갖는가? 대한항공은 사회적 필수서비스인 항공교통을 제공하는 공적 성격을 갖는 기업이다. 공적 성격을 가진 기업을 왜 조양호 일족과 같은 범죄 모리배들과 금융자본의 배당 높이기라는 사익 편취 수단으로 남겨두어야 한단 말인가?


대한항공이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커 온 만큼, 노동자가 안전하고 인간답게 일할 권리,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조할 권리, 기업 경영에 개입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의 세금(특혜)으로 키운 기업인만큼, 더욱이 사회적 필수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인만큼 대한항공은 총수 일족을 포함한 주주들의 기업이 아니라 전체 사회를 위한 기업, 노동자를 비롯한 전 사회적 통제 아래 경영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즉 조양호를 비롯한 재벌총수의 경영권 박탈과 재벌체제 청산은 주주들의 돈잔치인 “자본주의 시장(주주)의 촛불혁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민중의 투쟁으로, “내삶을 바꾸는 혁명”과 결합되었을 때 그 온전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2019년 3월 30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