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위원회 성명]
연이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자본주의가 죽였다
살인마 자본주의! 끝없는 이윤추구가 쉼 없는 노동을 만들었다
자본주의가 택배노동자 과로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자 죽음의 원인은 모두 자본의 이윤추구 때문이다. 한 노동자에게 살인적인 물량이 쏠려도 추가 인력을 고용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일해도 최저 생활비 정도를 버는 저임금의 고리에 놓인 노동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 배송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총알배송’ 시스템은 자본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주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끊이지 않은 올해 대한통운은 업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노동자가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니, 당연히 대한통운의 실적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의 죽음은 대한통운의 성공이기도 했다. 비단 올해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있었음에도 선제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출구 없는 죽음의 노동,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
“저 너무 힘들어요…” 이 말은 왜 동료노동자들에게만 전달되고, 자본에게는 전달되지 못했을까. 문제적 노동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특수고용노동자 제도가 원인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지만, 본질적으론 자본과 노동의 수직적 위계구조를 그 내용으로 한다. 해고가 쉽고, 노동에 대한 자본의 책임을 면피할 수 있도록 하는 특수고용노동자 제도가 유지되는 한, 택배노동자는 과로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노동자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하는 노동유연화가 자본의 극단적 노동착취의 본질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고선 과로 노동의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생산한 만큼의 권리를, 이윤만큼의 책임을
이처럼 노동자의 죽음은 자본의 이윤추구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축적한 이윤만큼의 책임조차 지지 않는다. 택배노동자에게 배송오류와 파손의 책임을 묻는 것처럼, 오히려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이 죽음의 구조,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어제와 같이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매일 아침마다 들어야 한다.
노동자의 것을 노동자의 것으로
죽음의 노동, 죽음의 사회를 멈추기 위해선 자본을 멈춰야 한다. 노동자 산업재해의 책임을 자본이 지도록 하고, 노동을 통한 생산의 결과를 노동자가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은 노동자가 하고 죽는 것도 노동자인데, 정작 자본이 돈과 무한한 삶을 누리는 모순을 바꿔야 한다. 결국 답은 자본주의가 아닌 그 반대의 사회다. 우리는 택배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오늘의 사회는 생명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이냐 삶이냐?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 앞에서, 계속된 죽음과 책임전가에 맞선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2020년 11월 4일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