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브리핑] 600조를 넘긴 정부 예산, 확장 정책 정말 맞습니까?
2022년 정부 예산: “공공성 외면-불평등 방치” 예산
‘초슈퍼 예산’ 호들갑 무색한 사실상의 긴축 예산
지난 12월 3일 국회를 통과한 2022년 예산안을 두고 정부여당은 ‘민생방역예산’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야당과 보수언론은 ‘초슈퍼 예산’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을 방치하고 공공성을 외면한 예산입니다. 증액은 됐지만 노동자민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사실상의 긴축 예산입니다.
2022년 정부 총지출은 607조 7천억 원 규모로, 작년 본예산 대비 8.7%가 증액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년 추경예산을 포함하면 고작 0.5% 늘어난 수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2021년 경상경제성장률이 5.6%로 예상되고 △기획재정부의 세수 전망 오류로 발생한 초과 세수 규모가 상당하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총수입이 4조7천억 원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적극적인 재정이라고 볼 수 없지요. 특히 한국의 정부 예산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실제 재정충격지수(FI: 전년 대비 재정기조(확장/중립/긴축)를 나타내는 지표)도 음수 값을 가져서 2021년에 비하면 긴축 성격의 재정이자, 코로나19로 그나마 일부 늘어난 지출 규모를 다시 줄이려는 예산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상 기획재정부가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재정건전성 우려’가 승리한 예산인 것이죠.
<공공성> 대신 <민간-자본-시장>을 선택한 정부 예산
서민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예산을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보건복지부 예산은 97조 4,767억 원으로, 추경 대비 5.1% 증가한 것에 그쳤습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의 증가율입니다. 2개 지역의 신규 공공 의료원 설계비로 20억이 증액됐습니다. 하지만 전체 중진료권 70개 지역 중 약 30곳에 공공병원이 전혀 없고 전체 병원의 5.6%에 불과한 최악의 공공병원 현실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코로나 이후 정부는 19차례에 걸쳐 총 3조 원이 넘는 돈을 손실보상금 명목으로 의료기관에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의료 대응을 위한 정책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민간병원이 다수인 상황에서 보상금만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자, ‘민간병원 이윤보장’에 불과합니다. 사실 해법은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민간병원 이윤을 보장해줄 예산으로 공공병원을 새로이 설립하거나 민간병원을 인수’하는 적극적 공공정책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에 이어 또다시 공공병원 예산은 외면하고 민간병원 지원금을 대폭 늘이는 예산을 내놨습니다. 보건의료 R&D사업, 의료기기 등 규제를 완화하는 사업 예산이 증액된 것 역시 이와 같은 기조를 반영합니다.
반면, 당장 시급한 의료 인력 충원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며, 국립대병원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축소 시범사업 예산은 아예 전액 삭감됐습니다.
돌봄 영역은 더 처참합니다. (비록 한참 모자란 수준의 법이지만) 사회서비스원법이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재가센터 확대 등 실질적인 사업 강화를 위한 예산은 전혀 증액되지 않았습니다. <다함께돌봄사업>의 경우, 2022년까지 다함께돌봄센터를 1.823개소로 확대토록 돼있으나 오히려 관련 예산은 38억 원이 삭감돼 버렸습니다. 노인돌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추가 예산도, 지역아동센터지원과 요보호아동 그룹홈 운영 지원비도, 보육교직원 인건비 및 운영지원 사업 예산도 제자리이거나 매우 소액 증액되는 데 그쳤습니다.
개별 사회서비스 관련 예산도 노동자에 대한 지원보다는 민간 사업자 지원이 우선되며, ‘민간-자본-시장 위주 예산’ 원칙이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외면당한 불평등 해소 예산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예산 편성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직에게 맞춤형복지비를 겨우 10만 원 인상하는 데 그쳤습니다. 복지비 차별도 해소되지 않았고, 명절휴가비는 등 다른 수당 차별 개선은 아예 제외되었으며, 공공기관-자회사-지방자치단체-교육기관의 수많은 비정규직은 그 대상에서도 삭제됐습니다.
이렇게 공공-의료-돌봄-평등 예산이 난도질당하는 사이, 국방예산은 54조 6,112억 원이 책정됐습니다. 전체 정부 예산의 8.15%에 해당합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시 연 40조 원이었던 국방예산은 매년 증액되어 연 55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재벌대기업 지원도 만만치 않습니다. ‘산업혁신’이라는 명목으로 국가 시책이 돼버린 재벌 지원은 이른바 ‘BIG3’라 부르는 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 등 3대 분야에 관해 연구개발(R&D)부터 기반시설과 시장조성까지 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 분야는 모두 삼성-현대차-SK 등 국내 상위 재벌이 집중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영역이죠. 정부는 여기에만 4.5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탄소중립경제’ 예산 12조 원 가운데 취약계층 지원 예산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기업 지원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전기차 보급 확대가 이 탄소중립 예산의 1/3에 달하고, 그 외에 대부분이 기업에 대한 설비 지원이나 ‘녹색산업’ 지원, 탄소 다배출 기업 사업전환 지원입니다.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노골적인 기업지원을 하는 것이죠. 반면, 사업재편으로 일자리 위기를 겪게 될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건 ‘교육훈련’ 정도뿐이니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정부 예산, 어디에 풀려야 하나?
2022년 정부 예산은 평등에 기반한 공공성 원리를 배척하고, 코로나19에 따른 민간과 자본의 이윤 보전에 초점을 둔 예산입니다. 이는 <손실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를 더 강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정부 정책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격차-차별 확대 등의 불평등 악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코로나19 이후 소위 ‘K자 회복’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특히 정권이 바뀌어도 무소불위의 재정권력을 휘두르는 기획재정부는 정부재정을 가계 살림과 비교하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60%, 재정적자비율 3%’의 재정준칙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소득의 규모 조정이 제한적인 가계와 달리 국가는 세입의 크기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또 정부의 채무 상환은 시기적 탄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가계살림-국가재정’ 비교는 그 시작부터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 국가의 재정정책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며,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조차 긴축재정이 저성장-불평등을 심화시켰음을 인정하며 적극적인 재정 운영을 주문하는 형국입니다.
위기와 불평등은 빈곤한 사람들에게, 권리가 지워진 사람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와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국가 책임의 기조가 필요합니다.
공공성과 노동권에 기반한 정책과 예산 집행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2022년 정부 예산은 위기와 불평등 해소에는 의지도 대책도 없어 보입니다. 있다면 시장 살리고, 기업 살리는 것이죠.
우리가 정권이 아닌 체제를 바꾸자고 하는 이유, 예산을 보면 더 뚜렷이 보입니다.
20대 대선 노동자민중 사회주의좌파공투본
경선후보 1번 이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