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숄츠 따라 샌델 대담한 이재명]
이재명 씨, 당신의 정의는 틀렸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과 온라인 화상대화를 하자 조선일보가 발끈해선 지지를 하는 건 아니라는 후속 기사를 냈습니다. 여당 후보가 유명 철학자와 단독 대담을 해 시선을 모으니 야당지로서 신경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재명은 샌델과의 대담에서 ‘형식적인 공정’ 담론을 경계하며 “능력주의로 포장된 불평등 위험”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는데요, 소수야당 후보로 유체이탈한 것인지 거대여당 후보와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입니다. 더구나 대장동 의혹에 아들 증여와 공시가 동결 등 각종 의혹과 논란으로 뒤범벅된 정치인에게 ‘샌델 분칠’이 하루아침에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선거를 앞두고 서구 정치인들처럼 샌델의 인기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올라프 숄츠 사민당대표 그리고 2012년 에드 밀리밴드 영국 노동당대표가 선거를 앞두고 이번 대담과 비슷한 행사를 열었었죠. 모두 샌델을 선거에 이용해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요, 애초 ‘제3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불러들여 불평등과 위기를 심화한 정당들이었죠. 그나마 세계 공황과 극우의 부상 속에서 시늉으로라도 ‘유턴’을 하겠다며 그 모멘텀으로 샌델을 호출했던 것이고요. 하지만 이번에 이재명 후보가 강조한 것은 “할당제 폐지, 위험한 생각” 정도였으니, 어쩌면 샌델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샌델 역시 능력주의 문제의 핵심 원인을 잘못 짚고 있습니다. 샌델은 간단히 말하면, “심화하는 빈부격차의 원인은 기득권 계층에 진입한 사람들의 자만심이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과연 사적인 자만심만으로 불평등이 구조화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우리는 기득권 계층에 진입한 사람들이 착하든 못됐든 그들의 성품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회 자체가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불평등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샌델은 능력주의의 결과만을 문제 삼지만 그가 말하는 능력 또한 허구입니다. 오히려 윤석열이 “물어보세요, 서류 보고 뽑는지”라고 한 말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샌델은 최근에는 바이든 미국 정부가 “능력주의가 통한다는 믿음을 깨는 가장 중요한 책무를 이행하고 있다”며 추켜세웁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이른바 ‘제2의 뉴딜법안’은 후퇴를 거듭하다 좌초할 위기에 있고, 세계적으로는 중국과 새로운 냉전을 심화하고 있는데 샌델의 믿음이 애초 가능하기나 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샌델이 의미가 있다면, 트럼프나 샌더스가 부상한 이유가 기성정당이 소외시킨 사람들의 반발 때문이라며 노동의 존엄성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 대목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문재인까지 다양한 수사로 개혁을 말했지만 그들 모두 불평등을 키워온 자본주의란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선을 세 달 남짓 남기고 있는 현재, 오히려 양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도 그들에게 대안이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재명 씨,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경고합니다. 제3의 길이라고 포장한 신자유주의와 고쳐 쓰는 자본주의란 구호 속에서 오히려 극우가 부상해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실용을 앞세운 각종 정책들이 결국은 더 큰 위기와 불평등을 악화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당신 역시 그 중심에 서있습니다. 대장동이, 보유세 동결이, 그리고 양도세 유예가 정의일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정의는 틀렸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투쟁, 사회변혁의 정치로 ‘정의’를 다시 쓰겠습니다.
20대 대선 노동자민중 사회주의좌파공투본 경선후보
기호 1번 이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