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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바이러스 자본주의


재난 상황에 장애인에게 던져준 생쌀

바이러스 앞에서도 

차별과 배제는 그대로


정명호┃장애인노조 위원장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비상이다.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중동, 미국까지 지역 사회 감염이 확산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이런 시국에 장애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먼저 중국에서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벌어진 사례를 보자. 한 아버지가 코로나19 의심환자로 분류돼 격리되자, 집에 홀로 남겨진 뇌성마비 아들이 6일간 방치됐다가 결국 사망했다. 이 사실은 지난 1월 30일 <베이징 청년보> 등의 언론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중국 중부 후베이성 농촌 지역에 사는 연청(17세)이라는 소년의 경우, 아버지와 남동생이 의심환자로 격리되자 홀로 집에 있다가 목숨을 잃었다. 아마도 그 소년은 아무런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다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코로나19는 한국도 강타했다. 발생 후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코로나19는 31번 확진자 등장 이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5천 명(5일 현재)이 넘을 정도로 확진자가 넘쳐나고 있다.


이에 스스로 거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도 이번 재난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 대구의 한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가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됐다. 활동지원사가 확진자이니, 그와 접촉했던 주변인들도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했다. 그 센터의 중증장애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의 현재 시스템에서는 별로 기대할 게 없었다. 결국 해당 센터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자가 격리 장애인과 24시간 함께 지내며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재난 앞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먹고 싸고 입고 자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형태다.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2주 동안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중증장애인에게, 고립은 말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다. 홀로 자가 격리에 들어간 한 중증장애인에게 대구시청에서 생활용품을 지원한 적이 있다. 이 장애인이 현관문까지 겨우 기어가서 확인한 지원품은 생쌀과 라면 등이었다. 이것이 이 사회가 장애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하다못해 간편식이 차고 넘치는 이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에게 생쌀을 준다? 옷 한 벌 갈아입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 중증장애인에게 생쌀을 툭 던져주고 ‘자가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소리는 사형선고와 같다.


장애인은 장애 유형에 따라 사회적 재난 상황에 필요한 대비책도 천차만별이다. 요즘은 코로나19 관련 정부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가 등장하지만, 이마저도 장애인들의 요구로 이번 사태부터 시행된 것이다. 과거 사스나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청각장애인들은 재난 상황에 관한 정부 브리핑조차 제대로 보고 듣지 못했다. 이번 코로나19 초기에 많은 희생자가 나온 청도 대남병원 사태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정신장애인을 집단 수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 사회에 던졌다. 무연고로 무려 20여 년간 수용돼 있다가 사망한 정신장애인의 사망 당시 몸무게는 불과 42kg이었다.


지난 3일에는 시청각 장애인 및 중복 장애인들이 코로나19 관련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안내 문자뿐만 아니라 점자나 확대 문자로 인쇄된 안내 자료 제공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통역사를 동반한 안내 요원의 방문 △시청각 장애인 가정에 마스크 제공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재난 상황에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유형은 의사소통이 힘든 발달장애인이다. 이번 코로나19에 관해 발달장애인들의 이해를 돕는 쉬운 글이나 도서를 제작해 배포한다고 한다. 그런데 발달장애인들도 장애 정도에 따라 각자의 특성이 천차만별이다. 글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그림이나 다른 방법으로 설명서를 만드는 등 더 세분된 맞춤형 글과 도서를 제작해 배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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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마이너(허현덕)]



누가 가장 피해를 보는가


나 역시 최중증장애인이다.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사의 보조 없이는 신변처리부터 대부분의 일상까지 어느 것 하나 영위할 수 없다. 내가 만약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하거나 확진 진단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장애인 수용시설인 대구 성보재활원에서 중증장애인 5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지난 3일 서울의료원으로 이송됐다. 방역 당국과 지자체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활동지원사를 요청했고, 센터는 환자 1명당 3명의 방호복을 입은 활동지원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병원 측이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이외의 간호 인력을 거부해 결국 병원 내 자체 인력으로 대처하게 됐다. 재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국가적 재난은 모두에게 고통을 준다.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고, 위축된다. 앞서 중국이나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을 언급했듯이, 국가 재난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사회구조 자체가 이들에게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고 그렇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난 상황에 대한 예방 대책과 정보 전달, 자가 격리나 확진 시의 대처 방안 등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적 체계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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