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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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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은 현장을 넘어

도시공간으로 확대돼야


최인기┃서울


8월12일 서울 중구청은 거대한 포클레인을 동원하여 물건이 가득 실린 12대의 노점마차를 부수고 싹쓸이 철거했다. 이 날 단속으로 몇몇 노점상과 활동가 최오수씨는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청계천 황학동에서 40년간 장사를 하면서 자녀 둘을 키워낸 68세 노점상 박은자씨는 넋을 읽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뜨거운 햇볕아래 “서민들을 위해 신뢰를 쌓고 정직하게 행정을 펼쳐야 할 최창식 중구청장이 가난한 거리의 노점상을 적으로 규정하고 생존권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적시었다. 이러한 모습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지난 7월30일에도 대대적이고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을 강행했고, 수년 동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버릇처럼 반복돼온 일이다.

중구의 청계천 황학동은 ‘학’이 날아와 ‘황학동' 이란 지명이 붙여진 그저 논밭이었던 곳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청계천변에는 낡은 판잣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노점상들이 하나 둘씩 모여 만물상을 형성했으며, 같은 시기 복개공사가 시작됐다. 1960년대를 거쳐 새마을 운동으로 고물들이 늘어나고 골동품 가게와 헌책방들이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벼룩시장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생계는 2000년대 들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이번에는 복개된 청계천을 뜯어내는 복원공사로 전체 청계천변에서 장사를 하던 노점상 3천여 명 중 2천여 명은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는 투쟁을 통해 풍물시장으로 또 일부는 동묘벼룩시장으로, 또 일부는 이번에 단속받은 성동공고 뒤편 담벼락에서 숨죽이며 장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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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노점상

노점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조건을 우선 살펴봐야 한다. 노점상은 자본축적 과정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허가받지 못하는 영세상인들이다. 이들은 경제적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과거에는 서민들이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해 소비를 촉진하는 것으로 나아갔지만 현재의 불황은 노점상 물품마저도 소비되지 않는 최악의 내수침체다. 이러한 문제는 자영업자들과 노점상간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상인들의 불만이 노점상 문제로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국 대부분의 상권을 둘러싼 공간은 노점상이든 상가든 일정정도 도로를 점유하는 식으로 형성돼 있다. 대표적으로 청계천변과 동대문 주변의 경우 일반 상가에서 도로를 점유하는 방식이 아니면 상권이 형성될 수 없는 구조다. 실제 현행도로법에 따르면 상가 밖으로 꺼내 놓고 장사하는 것은 모두 불법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노점상에게만 도로의 보행권을 들먹이며 책임을 돌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이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용산참사 이후 잠시 주춤했던 철거 용역반을 동원해 노점상 역기능을 최소화 한다는 이유로 소리소문 없이 단속을 벌이고 있으며, 이러한 폭력단속은 이제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비제도적 혹은 비범죄화 자율체계로 운영해야

노점상 문제를 둘러싼 정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도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의 해결책은 지역의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전개된다. 노점정책도 ‘상생위원회’를 만들어 실태조사와 유도구역 그리고 노점마차 규격화를 통해 노점상 총량제를 실시해서 노점상의 숫자를 일정한 수준으로 묶어 놓는 방법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이 본격화된 지 약 10년이 경과해 지금 서울지역 노점마차 숫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결국 노점상을 모두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상생위원회’를 통한 ‘노점관리 대책’이다. 도시공간이 현대적으로 재편된다 할지라도 노점상은 공간의 틈새를 활용하여 지대나 시설의 이용에 드는 간접비를 줄임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며, 상대적으로 삶의 끝자리에서 선택한 직업이기에 생존본능의 측면이 매우 높아 어떤 사회든 활동이 지속되기 마련이다. 이를 악용해 박근혜 정부는 최근 청년실업의 해결 방편으로 ‘푸드트럭’을 합법화하는 한편 기존 노점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단속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경제활동은 모든 부문을 통제하려함으로써 더 많은 법적 요구조건을 제시하거나, 품목의 일부를 기업의 생산에 편승해 공식성을 부여하고 이윤을 확대하려는 경향마저 가지고 있다.

노점상은 ‘(가칭)비제도적 혹은 비범죄화 자율체계’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 합법적인 조례와 같은 제도적 틀은 어떠한 형태로든 통제와 규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노점상이 현 자리를 지키고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사회운동진영과 연대하여 정부나 자치단체의 노점상 규제를 최소화하는 자율적인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청계천 황학동 노점상 단속은 서울 중구청의 문제를 넘어 박근혜정부의 총체적인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축적 과정으로서의 도시공간 그리고 재생산 영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시달리고 아무런 대책 없이 배제당하는 문제다. 박근혜 정부 아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혐오의 정치’ ‘폭력의 정치’에만 골몰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현장을 넘어 도시공간으로 확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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