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8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1.31 16:30

돼지풀잎벌레

 

생태 보존 관련된 일을 하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태교란유해식물을 제거하는 사업을 하려는데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태교란유해식물에 대한 교육을 부탁했다. 이런 사업이 생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생태를 더 교란시킨다고 생각해온 터라 교육을 거절했다.

환경부는 생태교란동식물을 지정해서 퇴치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생태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생태가 교란되는 것은 자연재해와 개발 때문이다. 자연재해가 인재로 밝혀지기도 하니 대개 생태교란은 사람 탓이다. 생태교란유해동식물을 퇴치한다고 해도 생태는 복원되지 않는다. 되려 이런 대증요법식 작업은 기껏 안정을 찾아가는 생태를 다시 교란시키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이미 귀화해서 정착한 동식물은 퇴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예산을 들여 사업을 벌여 보았자 제거할 수 없다. 이런 사업은 친환경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기업이나 단체가 벌리는 이벤트일 뿐이다.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가시박, 가시상추, 서양등골나물, 미국쑥부쟁이, 애기수영 따위가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교란유해식물이다. 돼지풀은 가장 먼저 생태교란유해식물로 지정된 풀이다. 북미 원산인 이 풀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1968년이지만 실제로 들어온 것은 한국전쟁 무렵으로 짐작하고 있다. 돼지풀은 전쟁과 개발로 파헤쳐진 곳을 따라 퍼져나갔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라는 데다 짐승도 먹지 않고 천적 곤충도 없기에 거침없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풀은 국화과 풀이지만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꽃가루받이를 한다. 많은 꽃가루를 날려 보내 사람에게 꽃가루 알러지를 일으키기에 쓸 데 없고 해롭기만 하다고 여겨 유해식물 1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 대구에서 돼지풀의 천적이 발견되었다. 돼지풀잎벌레다. 그 이듬해에는 경기도 비무장지대, 충북, 충남, 경남 등지에서도 돼지풀잎벌레가 속속 발견되어 이미 널리 퍼져 자라는 게 알려졌다. 돼지풀잎벌레가 국내에 어떻게 들어와 퍼져 살게 되었는지 아직까지 알려진 게 없다. 돼지풀잎벌레는 발견되자마자 돼지풀 제거를 위한 생물학적 방제대상종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외래종 곤충이 이렇게 환대받기는 처음일 게다.

돼지풀잎벌레가 돼지풀 방제에 쓰이려면 다른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돼지풀잎벌레는 돼지풀을 가장 좋아하지만 단풍잎돼지풀, 들깨, 도꼬마리, 큰도꼬마리, 해바라기 따위도 먹는 게 알려졌다. 아직까지 해바라기 같은 작물에 피해가 크지 않지만 돼지풀이 줄어들고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방제대상종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돼지풀잎벌레는 한 해 네 번에서 다섯 번 발생한다.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데 겨울나는 곳이 큰도꼬마리 마른 풀이라고 한다. 그래서 돼지풀잎벌레가 살아가는 데 큰도꼬마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큰도꼬마리 역시 원산지가 돼지풀잎벌레와 같은 북미이다. 큰도꼬마리에서 겨울을 난 돼지풀잎벌레는 이듬해 4월 돼지풀, 단풍잎돼지풀에 날아가 알을 낳는다.

돼지풀은 알려진 것과 달리 생태를 교란하는 풀이 아니다. 미국에서 토양을 개선시키는 풀 가운데 돼지풀만 한 게 없다고 한다(<대지의 수호자 잡초>). 풍부한 꽃가루와 열매, 부드러운 잎은 수많은 곤충의 식량이 된다(<한국 식물 생태 보감>). 돼지풀은 생태교란식물이 아니라 망가진 땅을 치유하고 생태를 회복시키는 풀이다. 넓게 보면 사람을 이롭게 하는 풀이다. 망가진 생태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자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생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강을 살린다면서 강을 죽이고, 사람살이를 나아지게 한다면서 먹을거리 가득한 너른 갯벌을 메워서 사막처럼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계속 저지르게 될 것이다.

 80-벌레이야기.jpg


그림 강우근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