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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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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는 ‘합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부안에 ‘공익안’ 옷입혀 내놓기 위한 속셈일 뿐


민주노총의 4.24. 선제 총파업 준비가 한창이다. 예년과 다른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공세 속도와 양상, 그래서인지 ‘지난번과 다르다’며 들썩이는 현장 분위기, 속속 이어지는 주요 산별과 사업장의 파업 결의 보고 등 진행되는 모습도 이전에 비해 구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악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 총파업이 가능하냐는 불신, 숲이 아닌 나무를 보며 ‘남의 일’처럼 여기는 관망, 총파업 국면에까지 이어지는 조직 내 갈등, 공적 연금 전선의 교란 우려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교란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노사정위원회의 움직임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주 1회 주기로 열어오던 노동시장 구조개혁 특위 논의를 3월 둘째 주 들어서며 주2회로 확대하는 등 논의 속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13일 열린 노사정 대표자 초청 오찬에서 “3월까지 노사정 합의 완료”를 다시 한 번 강력히 주문했다. 노동시장 구조개악 의제가 임단투와 연결되는 것을 경계하는 경총마저도 ‘논의시한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3월 노사정 논의 종료 이후 4월 국회 법안 상정’ 시나리오를 강행하고 있다.


‘노사정논의’ 울타리 치고 정부안 관철 의도

이런 청와대의 압박 속에 임금-노동시간 의제를 다루는 ‘1그룹’과 주로 노동시장 구조개악 문제와 긴밀히 연관된,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논의하는 ‘2그룹’ 모두가 각각 ‘공익전문가안’을 공개했다. 소위 공익안은 예상 그대로였다.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 예외 확대 △파견 규제 완화 △사내하도급 합법화 등 정부 정책의 핵심 내용이 그대로 ‘공익안’이란 이름으로 유지됐다.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요구’에는 ‘단계적 인상’을 못 박았고, 오히려 시중노임단가의 강제적용을 포기해 실효성을 버렸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역시 ‘근로자 대표 규정 개정’을 들먹이며 집단 노사관계의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말이 ‘공익안’이지 정부안과 아무런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은 이 공익안에 합의하게 될까. 총파업을 준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려오는 질문 중 하나도 이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현재 움직임을 볼 때, ‘합의’는 오히려 정부의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노사정위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공익전문가안’의 제출에 집착해 왔다. ‘사회적 대화의 알리바이’가 필요할 뿐, 정작 합의 여부는 두 번째 문제일 수도 있다. 노사정위 논의를 통해 필요한 것은 노사간 쟁점 속에 정부의 속내를 그대로 담은 ‘공익안’의 제출이다. 지난 3월9일 노동부장관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노사 모두가 반발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공익안이 중립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노사정위의 역할은 한국노총을 붙잡아 둔 가운데 ‘공익안’을 내놓고, 이 중 필요에 따라 국무회의를 거친 시행령 제정이나 국회 법안 개정안 송부, 노동부 가이드라인 발표를 거치는 데에 있다. 여기까지만 진행되면 노동시장 구조개악 논의는 정부의 노림수대로 ‘노사정 논의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된다.


세련된 정치력 아닌 원칙적 투쟁조직화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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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위원회, 혹은 이른바 사회적 대화가 갖는 위험성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노사정 합의’를 필요로 하던 과거에서 ‘대화의 알리바이’만으로 족하는 지경까지 진화했다. 한국노총이 최근 이전과 다르게 ‘노사정위 합의 불가’를 강력히 천명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게다. 애초 사회적 합의주의는 ‘합의’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정 대화’에 대한 사회적 우위를 부여하는 데에 있다. 그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고양과 폭발을 억제하고, ‘대화의 틀’을 벗어나는 투쟁을 일탈로 규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양대노총의 공동투쟁 기운이 올라가다가 노사정위 논의의 마무리와 함께 기세가 꺾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시각과 이해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노사정위 참가 여부’를 두고 형성됐던 쟁점은 이제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노사협조적인 그룹마저도 이제는 ‘노사정위 참가’를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함께 나타난 현상은 한국노총과의 공동 투쟁에 대한 거부감의 해체다. 즉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참여하고 있지만, 합의하지 않고 투쟁하겠다는 입장인데 공동투쟁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논리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입장은 앞서 언급한 ‘사회적 합의주의의 진화’에 무력하다.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맞선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에게 필요한 것은 세련되고 수위 높은 정치력보다, 우직하고 원칙적인 투쟁조직화다.

이승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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