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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등록금 내는 기계가 아니다”


곽서린┃학생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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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국민대학교 총학생회장이 곡기를 끊었다. 요구 사항은 밀실에서 진행되는 총장선출을 중단하고, 총장 직선제를 실현하라는 것. 


올해 말까지 임기가 남았던 국민대 유지수 총장이 지난 4월 5일 갑작스레 사퇴함에 따라 총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그런데 이사회가 차기 총장을 종전처럼 밀실에서 뽑겠다고 한 것이다. 실제로 이사회는 일방적으로 차기 총장 선출과정을 통보했다. 이사장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사를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이다. 학생과 구성원의 검증 과정을 배제하고 밀실에서 뽑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 방식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같은 방식으로 선출된 지난 유지수 총장 시절, 뼈아프게 배운 점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밀실에서 뽑힌 총장은 학생에게 해로운 존재라는 것을.



밀실 총장, 학생에게 이렇게나 해롭다


국민대 밀실 총장선출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2012년도 총장 선임에서는 총장추천위원회에서 3명을 선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는 4위에 불과한 유지수 후보자를 학칙을 개정하면서까지 총장에 당선시켰다. 물론 이 과정에서 후보자의 공약이나 의지를 학내 구성원이 들을 수 있는 자리는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유지수 총장은 2016년에 임기가 끝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장 선임 규정을 일방적으로 개정해 총장 연임에 성공하여 현재 2019년까지 총장에 재임했다.


그렇다면 유지수 총장은 좋은 총장이었을까. 법인에게는 천사, 학생에게는 악마였다. 유지수는 2016년 단과대 통폐합을 비롯해 대대적인 학과 구조조정을 실행했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 사회, 예체능 계열 학과들을 한꺼번에 정리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벌였지만, 총장은 학생들의 면담 요청을 줄곧 무시했다. 끝내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했지만, 총장의 일방통행을 멈추지는 못했다. 기세가 오른 총장은 학생들의 의견을 짓밟으며 비민주적 행정을 계속했다. 일방적인 열람실 폐쇄, 단과대 통폐합, 쓸데없는 부동산 구매 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쯤에서 묻는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져야 하는 입지란 무엇인가. 혹자는 대학이 재단과 이사회의 자본으로 굴러가므로 학생들이 총장선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학교는 엄연히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며, 학생들은 당당한 학교의 주인이다. 실제로 작년 국민대의 예산 중, 학생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7%에 달한다. 이렇듯 학생의 등록금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학생의 의견을 듣기는커녕 사회적 통제도 받지 않으며 독단적 전횡을 일삼고 있다. 마치 부모들의 돈과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면서도 제멋대로 개학을 연기했던 사립 유치원의 횡포가 겹쳐 보인다. 그저 이사회 마음대로 총장을 뽑고, 또 총장은 이사회의 뜻에 따라 대학을 통치한다. 총장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구성원이 아닌 이사회이기에, 총장이 학생들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다.


그 결과 여태껏 학생들은 대학본부의 독단적 행정 운영과 소통의 부재로 인해 크고 작은 불편함을 겪어 왔다. 예술대의 경우 창고로 사용해야 할 수준인 극도로 열악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고 실기를 진행하고 있다. 사회과학대 건물의 많은 강의실은 건물이 노후화되고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학생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 과학기술대 학생들은 학생회와의 상의도 없이 학교 측이 강행한 열람실 폐지로 인해 하루아침에 익숙한 공간을 잃어버리는 일을 겪었다. 비단 단과대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학생의 주차권 할당 비율 감소, 여론 수렴 없이 세워진 정문 앞 조형물 등 우리는 이미 수도 없는 문제들을 겪어 왔다. 이를 바꿀 근본적 방법은 학생의 목소리를 듣는 총장을 학생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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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한 단식농성, 3년 만의 학생총회, 포기는 없다


총학생회는 5월 20일 행정관 앞에서 총장 밀실 선출 중단, 학생참여 총장 직선제 실현을 외치며 기자회견과 함께 총학생회장의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포했다. 동시에 법인의 독단적인 행정과, 밀실 총장선출의 문제, 그리고 총장직선제의 필요성을 대자보 부착, 현수막 설치, 강의실 방문을 통해 학생사회에 알려 나갔다. 이러한 학생들의 요구와 분노에도 불구하고 법인은 여전히 학생참여 직선제는 안 된다며, 밀실 선출을 고집하고 있다. 총학생회장 단식이 어느덧 열흘을 넘겼지만, 법인은 묵묵부답이다.


이에 학생들은 ‘비상총회’를 소집했다. 재학생 1천 명이 광장에 모여 총장 직선제를 함께 외치기로 한 것이다. 이사회는 총장선출을 6월 20일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나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도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5월 30일 비상총회는 시작일 뿐이다. 이사회의 독단적인 총장선출을, 밀실 총장의 독단적인 대학 운영을 멈추기 위해, 학생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찾을 때까지. 학생들이 대학 운영의 주체로 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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