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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영끌’에 ‘빚투’, 자산을 향한 열망에 대해


요새 그렇게들 

투자를 많이 한다며?


선지현┃충북

이주용┃기관지위원장


* 아래 ‘A’, ‘B’, ‘C’의 이야기는 필자들이 20~30대 청년들과 40~50대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해 각색‧재구성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지난해 취업문을 뚫은 서른 살 A씨는 부모님 집에 살면서 월급을 아껴 차곡차곡 모아 속칭 ‘시드 머니(Seed Money: 종잣돈)’를 만들고 있다. ‘투자는 아직 이르고, 주식을 하더라도 종잣돈은 있어야지’하고 생각했던 A씨는 요새 좀 다급해졌다.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이 잇따라 주식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자신보다도 세 살 어린 동생 친구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레버리지’니, ‘인버스’니* 하며 이미 주식투자에 나섰다. 언론에서도 연일 ‘2030세대 투자 열풍’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에 빚투(대출받아서 투자)까지 나서는 청년들’을 거론한다. ‘이러다 나 혼자 뒤처지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만 커지는 요즘이다.


A씨 또래 가운데 투자에 나선 이들은 2~3년 전 비트코인 광풍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른바 ‘코인 탑승(비트코인 거래에 뛰어드는 것)’으로 수천만 원을 우습게 벌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평범하게 일해서 먹고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진 세상이 되니, 주변에서는 이때 이미 직접 코인 시장에 참여하기도 했고, 가격 변동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 이들은 주식 거래 계좌를 트기도 했다.


A씨라고 등락을 반복하는 자산 시황에 매달려 평생 마음 졸이며 살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적금 붓기도 빠듯한 지금의 월급이 별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 돈으로는 도저히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가 없다. 2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지금처럼 적금을 붓더라도, 평생 모아봤자 빚 없이는 집 한 채 사기 힘들다. 물론 주식을 하더라도 웬만해선 집 살 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걸 A씨도 알고 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그래도 부모님 집에 살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모으고 있지만, 이조차 쉽지 않은 친구들 몇몇은 주식보다 더 위험한 상품에 베팅하고 있다.


‘내 집 마련’만 문제인 게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퇴직하거나 은퇴한 뒤에는 모아놓은 자산이 없으면 먹고 살 길이 없다. 대기업 취직에 성공한 친구조차 자신이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벌써 퇴직 이후를 대비해 적금 붓듯 자산투자에 나섰다. 30대부터 노후를 걱정하는 시대, 이제 막 ‘시드 머니’ 1,500만 원가량을 모은 A씨는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나’ 하는 고민 속에 매일 주식시장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누구도 못 믿는다, 오로지 나!’


자동차 부품사에서 일하는 40대 후반의 노동자 B씨는 몇 년 전부터 불안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닌다. 자동차산업이 전기차 생산으로 빠르게 변하면서, B씨의 동료들은 ‘이 회사도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회사도 다 계획이 있겠지’ 하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비전을 제시하리라 믿지도 않는다. 아무도 믿지 못하니 길은 하나, 각자도생뿐이다.


B씨가 다니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이미 주식을 하고 있다. 기존에 하던 사람들도 있지만,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던 올 3월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저점 매수’를 노리며 새로 뛰어든 이들도 많다. 1997년만큼 위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주식은 다시 오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만 찾아보면 주식이나 자산투자를 안내하는 방송이 널렸고, 증권사들 역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홍보한다. B씨의 동료들은 일하면서 팟캐스트를 듣는데, 주식 방송을 구독하는 사람이 꽤 늘었다. 바로 옆에서 ‘이번에 투자로 몇 백, 몇 천만 원을 벌었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있으니, 열심히 일해도 별로 오르지 않는 임금을 두고 회사와 협상을 벌이는 게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편, 충청권에 소재한 B씨의 사업장에는 대전이나 세종에 사는 조합원도 몇 있는데, 요새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순식간에 수천만 원, 혹은 억 단위로 집값이 오르니, 다른 사람들은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부동산에 눈길이 간다.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주식으로 시선을 돌린 이도 많지만,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높다. 청주 같은 권역 내 주요 도시 집값도 들썩이니, 이전부터 부동산 투자를 알아보는 조합원도 여럿 있다.


B씨는 공장에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평균 연령이 50세를 넘어선 조합원들에게, 노후는 눈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다.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기댈 수 없고, 그 누가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불안한데 앞으로 20~30년은 더 남았을 인생을 혼자 힘으로 버티려면 은퇴 후에도 소득이 있어야 한다. 저축은행 적금 금리도 잘해야 2% 겨우 받는 요즘 세상에서, 은행 예‧적금 이자로는 노후를 버틸 수가 없다. 차라리 낮아진 이자 때문에 돈 빌리기도 쉬워진 만큼, 자금을 당겨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자산에 넣어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회사도, 노조도, 그 누구도 믿지 않지만, ‘자산 가격은 상승한다’는 것만큼은 믿는다.



뭔가 달라졌다


은행 노동자 C씨는 올해 들어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대출 상담 건수도 많아졌고, 특히 청년층 대출 수요가 크게 늘었다. 고객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당장 같이 일했던 30대 초반의 동료 한 명은 작심하고 ‘본격적으로 투자를 해보겠다’며 은행을 그만두고 퇴사했다. 은행에서 일하고 있으면 제대로 투자를 할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최근 C씨는 이른바 ‘따상’을 노린 자금 수요를 목도하고 있다. 주식시장에 신규 상장하는 기업은 상장 전에 ‘공모주’를 발행해 공개 청약으로 주주들을 모집하는데, 이 공모주 청약에 당첨되면 ‘공모가’로 해당 주식을 받는다. 그 후 실제 상장이 이뤄지면 시장에서 주가가 결정되는데, 상장 당일 주가가 애초 공모가보다 2배 이상 뛰고 상한가를 치는 걸 ‘따상’이라고 부른다. 근래 인기가 높은 바이오헬스나 IT 관련 기업의 상장이 진행되면서, C씨는 공모주 청약에 뛰어들기 위해 은행에 묶어둔 자금을 빼거나 대출까지 받는 경우도 종종 목격했다. 직접 체감한 바로는 최근 공모주 청약 때 예전보다 10배가량 많은 자금이 빠져나갔다. 2030세대 고객도 많았는데, 이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해 투자 자금을 빌렸다.


고객들이 C씨를 놀라게 한 건 이뿐만 아니다. 몇 년 전, 대략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고객이 ‘아파트를 매입하겠다’며 3억 원을 대출받아간 일이 있었다. 상담을 거쳐 대출 승인이 떨어지긴 했지만, C씨는 내심 ‘젊은 사람이 어떻게 저 큰돈을 갚으려나’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웬걸, 그 고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출금을 상환하러 왔다. 거주 목적으로 집을 산 게 아니었다. 시세 차익을 남기고 그 집을 팔아서 대출금을 다시 갚은 것이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세대를 가리지 않고 자산시장에 뛰어드는 현실을 눈앞에서 경험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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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를 권유하는 세상


이제는 ‘동학 개미’라는 표현조차 진부한 말이 됐다. 1997년 IMF 위기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겪으며 ‘주식은 까딱하면 집안 말아먹는 위험천만한 투기’라고 생각했던 게 마치 고리짝 얘기라는 듯한 분위기다.


지난 5월 금융투자협회(금투협)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식활동계좌 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5% 증가했는데(올 초 2,935만 개 → 4월 말 3,125만 개) 이 가운데 2030세대 투자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금투협은 이들이 “본인의 투자 여력을 초과한” 거래, 즉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거나 위험성이 더 높은 파생상품 매입에 나서는 비중이 늘고 있어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자체 진단을 내놓았다.


‘빚투’는 청년만의 얘기도 아니다. 금투협 통계를 보면 올 2분기 신용공여(증권사가 투자자들에게 빌려준 돈) 잔고는 총 29조 9천억 원으로, 3개월 만에 무려 36%(7조 9천억 원) 급증하며 분기 증가 폭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렇게 대출받은 돈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신용거래융자 잔액 역시 9월 들어 17조 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치다. 주식 투자를 위해 대기하는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작년 내내 20조 원대에 머무르다가 올해 들어 빠르게 증가해 지난 6월 말 처음으로 50조 원을 찍더니, 이제는 60조 원을 내다보고 있다.


‘빚투’ 규모 면에서 압도적인 분야는 부동산이다.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올 2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637조 원(사상 최대치)으로 한 분기 만에 26조 원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만 15조 원 증가해 총액으로 873조 원을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2030세대의 대출이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5월까지 2030세대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33조 7천억 원에 달해, 작년 같은 기간(22조 4천억 원)보다 51%나 뛰어올랐다.


자산시장을 향한 열망이 커지는 현상은 분명해 보인다. 혹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 세상에서 나만 가만히 있다간 나중에 비참하게 쪼들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강해지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열풍’의 원인을 ‘부도덕한 탐욕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당장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사람들 역시 너무나 흔하게 ‘주식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얘기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각자가 원해서 투자하는데 별수 있나’ 하며 체념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편으로는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도 벅차서 ‘영끌’이든 ‘빚투’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박탈감 속에 절망을 쌓아가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다른 한편, 노동자가 아니라 ‘자산 소유자’로서의 의식이 퍼지는 것은 변혁에 대한 열망을 스스로 꺾고 체제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의 열망 혹은 두려움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이 사회구조의 모순을 파헤치고, 이들을 운동으로 이끌어낼 단초를 찾아야 한다.



* ‘레버리지’는 자신이 가진 돈보다 더 큰 규모로 투자하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을 말하며, ‘인버스’는 주가가 하락할 때 이익을 얻는 금융상품을 뜻한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까지 세계적으로 인터넷 등 IT 관련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주가가 폭등했다가 급격하게 거품이 꺼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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