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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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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8.01 16:04

“재형이를 보내고 감옥에서…”


박정상┃경기


제가 구속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났네요.동지들이 접견 와서 <변혁정치>에 글을 써달라고 했을 때 선뜻 쓰겠다고는 했지만 막막하더군요. 편지지를 펴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개인적인 고민과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제가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배가 해준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운동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특히 바로 내 옆에 있는 동지들과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운동을 하면서 주변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는가,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내 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그리고 전환점이 되었던 몇 번의 관계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절친들을 ‘열사’라는 이름으로 떠나보내고…

제가 노동조합 활동을 처음 시작한 곳이 화물연대입니다. 누군가를 그렇게 설득해본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회장을 만들려고 두 달이 넘게 쫓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람이 바로 화물연대 최복남 열사입니다. 그렇게 지회장 안하려고 도망 다니더니 막상 지회장을 맡고서는 정말 열성적으로 활동했고, 조합원 한명 한명을 세심하게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지 쑥스러워 하면서도 아이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동지가 떠난 그날도 지회 조합원들보다 먼저 현장에 나가 선전물을 챙기고 총파업 선전전을 진행하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두 번째 관계는 화물연대 김동윤 열사입니다. 하필이면 동지가 죽기 이틀 전 저와 전화 통화를 했죠. 김동윤 열사가 부산항 5부두 입구에서 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고 누워있는 모습에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열사투쟁을 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투쟁을 회피하는 지도부, 풀리지 않는 교섭, 심지어 “열사의 죽음을 이용해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게 뭐냐”는 비난까지, 너무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2005년 김동윤 열사 투쟁을 거치면서 부터였던 것 같네요. 공권력에 대한 분노, 또한 나와 의견이 다른 동지들에 대해 상처를 줄 정도로 날을 세워 논쟁하고 비난에 가까울 정도로 비판을 하게 된 게 말입니다.

세 번째는 박종태 열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화물연대에 상근하면서 세 명의 동지를 떠나보냈네요. 박종태 동지는 학생운동시절 부산지역대학생연합 풍물패를 조직할 때 만난 동지였습니다. 비록 정파는 달랐지만 저를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후배였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고 불과 6~7년 사이에 절친했거나 내가 조직해서 운동을 하게 된 동지들을 세 명이나 열사라는 이름으로 떠나보내는 것, 정말 힘들더군요. 그 이후, 주위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게 두려워졌습니다. 대인기피증도 생겼고요. 여러 동지들과 있을 때는 그럭저럭 어울리지만 두세 명이 있을 때는 예전부터 아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말을 잘 안하게 되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생긴 겁니다.


끊임없는 고민 “나는 왜 운동을 하고 있는가”

그렇게 전투적 조합주의자, 나홀로 ‘좌파’로 독불장군 식으로 활동하다 사노위(현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에 가입했습니다. 지금까지 운동을 하면서 몇 안 되는 잘 한 일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고민해왔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고 활동할 수 있는 동지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지요.

쌍용차대책위 활동 이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에서 다시 대중조직 활동을 하게 되면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조직하고 투쟁하고 주변 동지들의 의견을 많이 듣게 됐습니다. 사노위를 거쳐 추진위로 오면서 동지들과의 소통, 선배들의 충고가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천․여주에서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열심히 활동하는 동지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활력도 얻게 됐고요.

그런데 지난 5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거죠. 할 수만 있다면 5월7일부터 11일까지 시간을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5일 동안 강원도 해안 구석구석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11일 오후에 배재형 열사를 하필이면 제가 제일 먼저 발견하고 수습하게 된 것입니다.

화물연대 시절 세 명의 동지를 떠나보낸 것도 힘들었지만 배재형 동지의 죽음은 정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던 친한 동료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은 너무도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추진위 활동을 하면서 그나마 나아졌던 대인기피증이 다시 심해질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나는 왜 운동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 추진위는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가 운동을 하는 한 계속 하게 될 고민일 것입니다.

동지들! 보고 싶네요. 언제고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다시 만나게 되겠죠. 그때까지 다들 건강 잘 챙기시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 여주교도소에 수감중인 박정상동지가 7월8일 보내온 편지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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