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본의 노동착취에 맞서 죽음으로 항거한 최종범 열사께 삼가 조의를 표하고, 열사의 뜻을 지키기 위해 장례까지 미루고 엄동설한에 노숙투쟁까지 마다하지 않은 유가족들께 다시 한 번 위로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 삼성자본의 탄압에 맞서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고 가열차게 투쟁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께 경의를 표한다.
2013년 12월 20일 합의내용에 대한 의견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의 투쟁을 조금이라도 폄하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기 바란다. 다만,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은 한국사회 최대자본이며 무노조경영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삼성자본에 맞선 투쟁이며, 열사정신을 계승하는 투쟁이며, 원하청 구조를 악용한 자본의 착취에 맞선 비정규투쟁이라는 점에서 이번 합의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후 투쟁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는 뜻에서 조심스럽게 평가의견을 제출한다.
5개 항으로 이루어진 합의 내용 중 노동조합활동을 보장하고 조합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고, 리스차량과 유류비 지급 등 노동조건을 일정정도 개선한 것은 유의미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내용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 합의서 전문에 명시되어 있듯이 합의의 효력범위는 최종범 열사가 일했던 삼성TSP(주)(두정센터)로 국한되어 있다. 이번 투쟁은 전국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전체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합의의 효력범위를 제한한 것은 문제이다. 추후 삼성자본이 효력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 합의서 5항에 노사는 민형사 소를 취하하고, 합의 이후에도 소제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노동조합 투쟁에서 최종 합의에 대체로 들어가는 내용이어서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종범 열사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하청업체 사장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묻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향후 책임을 묻는 투쟁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함으로써 열사의 영전에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3) 합의 당사자가 삼성TSP(주)에서 경총 노사대책팀장으로 바뀌었다. 사측 최종안의 합의주체가 삼성TSP(주)로 되어 있는데 대해, 유가족은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두정센터 하청사장과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금속노조는 궁색하게도 그동안 금속노조가 경총을 합의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관례를 깨면서까지 경총 노사대책팀장을 합의주체로 인정했다.
합의주체를 경총이나 하청업체협의체로 바꾼다해도 본질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삼성TSP가 합의주체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궁색한 안으로 유가족의 동의를 구할 것이 아니라, 다시 원점에서 투쟁을 선택했어야 했다.
4) 원청자본인 삼성전자서비스는 대표이사 명의의 공문을 서비스센터 하청업체에 보냈다. 그 내용은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준법경영을 해왔고, 협력사(하청업체)들도 준법경영에 매진해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향후의 부당노동행위는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의 책임이 아니라 하청업체의 책임임을 명시한 내용으로 해석된다.
이 공문은 형식적으로 보면 부속합의서로 조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협상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이러한 내용의 공문을 합의 후 즉각 보낸다는 것을 통보받았음에도 그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이는 현재 하청노동자 비정규투쟁 과정에서 원청자본의 사용자 책임문제가 노자 간의 첨예한 대립지점이며, 원청자본의 사용자성이 부정될 수 있는 소지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현재 한국노동운동은 노자간의 역관계로 볼 때 투쟁의 결과를 합의 내용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이러한 문제를 안게 된 근본적 원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범 열사가 목숨을 잃은 후 유가족이 삼성본관 앞에서 농성투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문제해결을 방치하고 있는 삼성자본에 대한 공분이 형성되고 있었다. 삼성자본에 대한 사회적 연대투쟁을 확대하고, 전국 각 지역의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 대한 투쟁을 강화하는 등 투쟁의 기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점에서 금속노조와 대책위는 1월말까지의 열사투쟁계획을 결정한 바 있다. 신생노조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도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투쟁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속노조 지도부는 보다 확고한 투쟁의지와 구체적인 투쟁계획으로 투쟁의 전망을 열어야 했다. 그러나 12월 21일을 넘기면 큰 일이 일어날 듯 합의를 서둘렀다. 사측 최종안의 내용이 투쟁의 한 주체인 열사대책위에서조차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이처럼 절차상으로도 분명한 오류를 범할 정도로 합의를 서둘렀던 것은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원칙과 의지의 부족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는 삼성전자서비스투쟁에 함께 해 온 주체이다. 따라서 이번 합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에 함께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는 빠른 시일 내에 이번 투쟁과 합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엄밀히 자기평가하고 향후 투쟁에서 같은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변혁적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