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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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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새로운 정치가 열린다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노동자계급을 위해서

변혁운동의 전진에 나서야


김종인 “늦은 출범이지만 사명감 갖고 잘해내길”

이광일 “독자적으로 출발하는 의미 매우 커”

정찬호 “어려운 현실 속에 대중적 힘 키우는 게 관건”

이종회 “새롭게 서 나가는 데 정치적 의미 부여”


1월31일 창당을 앞두고, <변혁정치>가 노동자계급정당 출범의 의미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좌담을 마련했다. 비정규직이 노동계급의 새로운 주체로 형성되고 있는 지금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김종인 부위원장,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되었나>를 저술하기도 한 정치학 전공 이광일 교수, 민주노총 광주본부에서 활동했으며 여러 투쟁으로 수차례 투옥되기도 한 광주지역 정찬호 현장활동가,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이종회 공동대표가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현 시기 노동자계급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여러 우려와 바람을 드러냈다.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좌담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2016년 1월6일(수) 낮12시,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사무실

참가┃김종인(민주노총 부위원장), 이광일(성공회대 교수), 정찬호(광주지역 현장활동가), 이종회(공동대표)

진행┃김태연(정책교육위원장) 

정리┃이황미(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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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이하 ‘진행’)┃오는 1월31일 노동자계급정당이 출범할 예정이다. 노동자계급정당 출범 의미에 기조적으로 한 말씀 해 달라.

이광일(이하 ‘이광’)┃최소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세력들의 여러 정치세력화 시도가 있었으나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 특히 반공분단체제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헤게모니가 워낙 강하다보니 그 세력으로부터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정당으로 보면 민노당이나 통진당 등이 제도 안의 정당으로 존재하며 나름 의미 있는 활동을 해 오면서 마치 독자화된 것처럼 비춰진 측면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오래가지 못하고 명멸하였다. 큰 틀에서 보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크며 ‘통진당의 해산’은 그 상징이다. 다른 한편 자유주의정치세력과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의한 통진당의 해산에 대해 정작 자유주의정치세력은 그 어떤 비판도 제기 한 바 없는데, 바로 이 점은 현재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내분과 위기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들 또한 여러 측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지 못한 탓이다. 현재 나타나는 제도권 여당의 내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노동자계급정당이 출범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되었으나 여의치 않았던 독자화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면에서,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의미가 크다.

정찬호(이하 ‘정’)┃현실운동이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굴절되고 개량화되면서, 우리가 가져나가야 할 기조가 퇴색해버린 상황에서 새로운 깃발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 힘이 과연 퇴락하고 있는 현실운동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추진위를 비롯해 군소정치세력들이 시도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대중적 힘이 없다는 것이다. 대중적 힘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김종인(이하 ‘김’)┃민주노총에 정치위원회도 있고 조직적 논의도 있어서 조심스럽다.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한국 사회는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고도자본주의사회임에도 노동자정치가 활성화되지 못해서 계급모순이 극에 달해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진작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정치운동, 나아가 정당이 있었어야 하고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많이 늦었다. 일제하에서도 사회주의운동이 대단히 활성화됐지만, 한국전쟁 거치면서 뿌리째 뽑히고 싹이 잘리고 씨앗까지 죽은 상황이다. 그것을 다시 복원해야 하는 시점이다. 물론 민노당 등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자계급정당으로 볼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롭게 출범하려고 하는 노동자계급정당을 대단히 주목하고 있으며 의미도 크다고 본다. 늦었지만 출범하게 된 만큼 지금부터라도 사명감을 갖고 제대로 잘해내서 크게 발전했으면 한다.

이종회(이하 ‘이종’)┃지금은 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주의운동에서 본다면 대략 세 번째 단계인 것 같다. 두 번째 단계는 87년 민주화투쟁과 96~97년 투쟁을 기반으로 민주노동당이 출범했던 시기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신자유주의 공세로 생존권이 무너지면서 87년 투쟁의 성과였던 민주주의도 같이 무너졌다. 그리고 민주노총 토대가 무너지는 것과 맞물려 민주노동당이 같이 무너지며 현재까지 왔다. 지금 신자유주의 공세에 의해 재편된 토대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본다면 세 번째 단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기보다 새롭게 서 나가는 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자계급정당 출범의 조건과 노선]

정 “대중적 물질적 인적 자산 등 봤을 때 시기상조”

이종 “주체역량 미약하지만 투쟁으로 돌파해야”

김 “대안사회 추구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의무”

이광 “사회주의 내용․이행과정․전략전술 새로운 고민 필요”


진행┃대체적으로 변혁을 지향하는 당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미생같아 보이지만 살아나는 것을 넘어서 제대로 역할하는 것이 관건이겠다. 정당의 주요 노선은 해당 시기 그 사회의 변혁운동 성격, 주객관적 조건 등을 고려하여 설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계급정당은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건설을 주요 노선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종┃한국 분단체제에서 사회주의를 내걸고 돌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돌파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 판단이며, 두 번째는 현실적으로 가지는 유의미성이다. 이광일선생이 말했듯 한국 사회는 워낙 반공에 기초한 보수 자유주의 세력이 강하다보니 진보세력이 자리를 잡지 못해서 현실정치에서 좌표이동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 지향의 독자성이 없지는 않았다. 민주노동당도 시작은 사회주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지금 공황시기에서 현실적 의미이다. 현재 공황시기에 자본은 손실을 사회화하기 위해서 구조조정 등으로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대응방안은 자본을 사회화하는 것뿐이다. 이는 기존 사회주의운동의 역사 속에서 공황시기에 제출된 대안,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문제와 같다. 한국 사회 분단 지형에서 주체의 조직역량이 미약한 지금 깃발을 내걸 수 있냐의 문제인데 이것은 투쟁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실상 1, 2차 세계대전 이전 공황시기 사회주의운동이 투쟁으로 돌파한 전형적 경우다. 특히 최근 그리스나 스페인 등 남유럽투쟁으로 보면,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서나가는 과정이었다. 지금 공황 시기에 특히 그런 역동성을 어떻게 투쟁하고 조직해낼 것인가, 그리고 깃발로 세워낼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정┃한국사회 구성 자체가 이미 일부 학자들이 아류제국주의라고 표현할 정도로 고도로 발달돼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탄탄하게 구축돼가고 있다고 볼 때, 변혁운동의 필요성에는 이론의 여지는 없다. 사회주의혁명을 모토로 삼아야 하고 그런 힘을 만들어낼 축을 만들어내는 것이 운동의 기초가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시기에 이 운동을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 건설’로 대중 속에 던질 수는 없다. 물론 그런 사회변혁적 성격은 명확하고, 그런 목표와 전략에 입각해서 가야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런 내용을 대중 속에 회자되고 하고 힘을 축적하려면 결국은 강령이다. 어떻게 강령이 대중과 호흡하도록 만들어갈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는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세력이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와 결부돼있다.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 건설’ 기조에 이론의 여지는 없지만, 과연 지금 노동자계급정당을 준비하는 세력들의 강령이 잘 다듬어져있는가, 그것을 치켜세울 대중적 물질적 인적 자산이 축적돼 있는가. 이런 측면에서, 노선의 문제가 아닌 준비 상황을 봤을 때 시기상조라고 본다.

김┃정당등록을 할 계획인가?

이종┃숫자가 되면 등록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종이정당을 만들 계획은 없다. 현재 정당법이 정치활동을 많이 제약하고 있으므로 헌법소원을 해볼까 하는 고민은 있다.

김┃등록할 수 있는 정당 요건을 갖추냐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내걸었을 때 현재 법으로는 제약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건조하게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다면 체제모순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운동하는 사람들의 의무라고 본다. 지금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안은 사회주의라고 보는 사람으로서 방향은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계사적인 경험으로 보나, 이미 세계가 지구촌화돼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일국사회주의를 추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길일 것이다.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와 현행법 속에서 등록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강령에 사회주의 이념을 걸었을 때 대중적으로 얼마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어서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등록은 안할 수도 있고, 도리어 근본적 문제를 돌파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고 시기상조도 아니라고 본다.

이광┃등록 여부는 중요하다. 아무리 급진적 노동자들이라 하더라도 선거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참여, 선택의 고뇌가 없을 수 없다. 정치는 도덕적, 윤리적 우위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당원 수를 채우지 못해 정당 등록을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공식적으로는 등록을 분명한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헌법소원도 그런 돌파의 한 방법이라고 본다. 오히려 그런 적극적인 시도가 ‘이런 정당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리며 대중과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좀 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건설이라고 하는데, 자본주의 철폐는 사실 뉘앙스의 차이는 있겠지만 민노당을 비롯해서 의미 있는 국내외 정치세력이 그 동안 다 내세워온 가치라 큰 논란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강령을 내거는 것의 적실성 여부보다도 자본주의 철폐라고 할 때, 오히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재생산은 노자관계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사회적 관계들이 서로 내재화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 가부장체제의 문제나 생태, 환경, 성소수자, 나아가 인종, 민족적 문제가 매개된 이주노동자 문제 등은 노자관계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것처럼, 마치 자본 재생산의 밖에 있는 문제인 듯 여긴다. 기존 진보정당들 모두 그것들을 외부의 문제로 두어 온 것이 사실이다. 출범할 정당은 계급정당을 내세울 것이지만, 다른 한편 ‘가장 급진적인 변혁정당’이 될 것이기에 이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더 세심하게 고민해서 사회주의든 공산주의 건설이든 그 목표를 내걸 필요가 있다. 물론 반공분단사회에서 그런 목표를 내거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요지는 그렇게 될 때 ‘건설할 사회주의’의 내용이나 이행 과정의 전략전술도 새롭게 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운동 및 대중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등의 동력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정┃정당 등록과 관련해서, 지금 시대에 변혁 운동, 사회주의운동을 하겠다는 것이 지하에 땅굴파고 전위조직 만들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지금의 사회주의 운동은 더 열고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시기다.


[정당다운 실천의 핵심과 조건]

이종 “변화된 계급구성 속에 주체 재형성이 관건”

이광 “이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사람들 대변해야”

정 “당원․활동가 양성, 요소요소에 포진해 활동해야”

김 “당의 자양분,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위해 싸워야”


진행┃정당은 노선을 표방하는 것만으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본다. 현실운동에서 정당답게 실천해야 한다. 현 시기에 ‘정당다운 실천’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런 점에서 출범하는 노동자계급정당이 주력해야 할 활동과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일까?

이종┃제일 어려운 문제다. 민노당 거치면서 일정한 전형이 만들어진 듯하다. 거세된 정치활동이라고 해야 할까, 심상정은 ‘헌법안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그런 수준에서 틀 안에서 정치후원금 내고 투표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중요한 정치행위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 제한되면 결국 민원창구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런 테두리를 넘어서는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동지가 정치의 주체’라고 이야기해 왔다. 정치의 주체로 서 가는, 현장과 의회를 넘나들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건데 안 가본 길이라서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주체형성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현장이 활동가 재생산이 안 되고 무너지는 시점에 있다. 아래로부터 재구축해야 하고, 주체 측면에서도 비정규 등 불안정노동층이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주체형성은 단순히 투쟁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고 토대 변화와 맞물려야 한다. 토대 변화와 그것을 통한 주체 재형성, 그렇게 해서 현장과 의회를 넘나드는 정치를 포괄적으로 기획해볼 수 있다.

이광┃정당답다는 것은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의 정강정책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 아니겠는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이해와 사회경제적 이해를 위해 복무하는 게 가장 걸맞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이 노동자계급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그 내부에 차이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결국 가장 급진적 운동, 정치세력은 그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가장 고통 받는 비정규직, 그리고 그 가운데 가부장제로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여성, 나아가 이주노동자를 위해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정당도 할 일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이 당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는 것, 즉 자기 지배의 원리가 핵심이다. 당 조직의 구성, 활동, 그리고 다른 조직과 연대 등에서 이런 원칙을 흐트러짐 없이 철저하게 지켜나가면 중장기적으로 대중은 노동자계급정당을 다시 보지 않겠나.

정┃왜 지금 시기에 변혁운동진영이 약화되고 분열돼있을까. 87년 대투쟁 이후 96~97년까지 10여 년간은 이런 정치조직이 방향을 제출했을 때 많이 호응하고 스스로 가야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선진노동자나 현장활동가들이 그랬고, 현장에 전파했다. 그런데 운동이 꼬꾸라지니까 현장활동가나 선진노동자층도 취약해졌다. 이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객관적 물적 토대다. 상황이 이런데 머릿속에 옛날 영화를 떠올리며, 깃발 올리면 달라붙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강령도 중요하고, 당내 민주주의도 기본적으로 지켜나가야겠지만 문제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정세의 반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쉽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그 시기만 기다리고 있을 건가?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정당을 추진하는 세력들은 지금 당장 큰 힘을 장악하고 역사를 뒤집지 못할지라도, 인자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이든, 완전히 개량화된 정규직 내부에서 진지를 구축하든, 주변운동으로 멀어진 생태․이주 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당원들이 촘촘히 박혀 거기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기투쟁을 하더라도 당의 영향력이 미치며 같이 호흡하는 게 필요하다. 큰 투쟁을 조직하고 정치파업을 조직할 힘이 없다면 제대로 된 당원과 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 짧게는 십 수 년일 수 있고, 더 길 수게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정세의 반전이 없다면, 그런 요소요소에 당원들이 박혀서 구조를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관건이다.

김┃어려운 문제다. 등록한다면 공공장소에 현수막을 걸 수도 있고 정당연설회로 선전선동하는 등 유리한 조건이 많다. 또한 현실적으로 정당이라면 선거 참여와 의회전술 구사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노당이 실패했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바로 노동자계급정당의 토대이자 자양분이 되는 주체, 당원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거다. 민주노총이 어려워지면 진보정당도 같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확인하듯, 기본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했으면 한다.

진행┃상당기간 양적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디에 주력할 것인가는 계속되는 고민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춰야 당다운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정┃1천 명 정도면 되지 않을까. 당원 1천명이 움직인다면 1만, 10만까지 확대될 수 있다. 기왕 숫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노동자계급정당은 대중정당을 표방하고 띄워야겠지만 입당원서 쓰고 당비 내면 당원일까? 당원 늘리려고 노조에 가서 교육 한번 하고 입당원서 돌려서 받아가는 것은 소부르주아정당과 차이가 없다. 당은 이 시대에 헌신하고 투쟁하는 투사들의 집합체여야 한다. 그리고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검증기간을 거쳐서 당으로 선발돼 올라오는 방식의 2단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층이 굳건하게 서서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당이 살아남는 길이다.

이광┃숫자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문제는 재생산인데, 운동과 자기 삶이 분리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조직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최근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협동조합운동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왜 그런 운동에 활동가와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삶과 운동이 일치하는 기반이 형성된다면 1천 명이든 5백 명이든 의미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다. 집에서는 알아서 살고, 당에 와서는 우리 의제로 활동하자고 하는 식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급진정당이라면 삶의 재생산까지 고민해야 한다.

김┃규모만큼 당원 재교육도 중요하다. 적의 적은 아군이고, 무조건 우리 편만 되면 된다는 식은 곤란하다. 당원이 내용을 갖춰야만 확대도 가능하다.

정┃이광일선생의 삶과 밀착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소모임활동도 하고, 등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술도 한잔 하고, 지역사무실에 당구대도 두면 어떤가. 투쟁 현장에만 등장하는 당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미조직 다수 노동자대중과 만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방침]

김 “총선에 가급적 공동대응이 최선”

이종 “조합원들의 정치사상의 자유 보장돼야”

이광 “방침 결정 과정에 격렬한 논쟁 벌여야”

정 “노동자계급정당은 독자후보전술 고려할만”


진행┃진보변혁진영의 정치운동은 현재 통합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노동자계급정당, 시민혁명당 등 ‘춘추전국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황과 관련하여 최근 민주노총, 전농 등 대중조직의 정치방침으로 통합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히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해 달다.

김┃민주노총은 총선방침 논의중에 있다. 정치방침 역시 연동되긴 하지만 아직 논의를 시작조차 못했고,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총선방침과 관련해 말씀드리자면, 피지배계급으로서 노동자민중의 힘은 단결에서 나온다는 게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새누리당은 2백석 이상 확보해서 국회선진화법을 바꾸고 노동개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민중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은 어떻게든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 차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진보정당들이 분열하지 말고 하나로 대응해야 한다는 두 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선거는 가급적 모아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 민주노총이 제안한 가설정당은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선거투쟁본부를 구성해 진보정치세력을 모두 지지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과거 실패한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중조직의 정치방침은 필요하다. 아래로부터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 과거처럼 위에서 만들어 내리꽂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실패한 경험에는 배타적 지지 방침도 포함돼 있다.

이종┃작년에 힘이 크진 않았지만 어쨌든 총파업과 총궐기로 쭉 끌고 온 과정이 있다. 요구를 내건 투쟁을 통해 정치적으로 관철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민주노총은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보고, 선거 시기 그런 기획은 유의미하다고 본다. 다만 가설정당은 법제도적 문제와 맞물리기도 하고, 전략전술적 판단까지 검토돼야 해서 현실적으로 난감하다는 측면에서 김종인동지와 비슷한 생각이다. 핵심은 조합원들의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타적 지지를 조직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이광┃지금 시기에 옛날처럼 배타적 지지와 같은 방침은 있을 수 없다. 그보다 민주노총의 문제는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또 편의적으로 방침을 달리 해석하고, 방침이 정해진다 해도 특정 지역은 관철이 안 되고, 그 결과 심지어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기도 한다. 당장 선거가 올 4월인데, 지금 방침을 만들어 관철시키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일반대중을 우습게 여기는 행태다. 자유스럽게 둬야 한다. 물론 선거 국면이니까 여러 가지 공동대응을 할 수 있다고는 본다. 노동자계급정당의 문제로 본다면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를 내걸고, 심지어 더불어민주당과 ‘선거연대’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기우에서 말하건데 적극적으로 현실 제도정치와 접점을 형성하며 존재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다.

정┃총선 국면을 놓고 봤을 때 노동자계급정당은 정확하게 구별정립하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선전선동하는 정치적 장 정도로 고민했으면 한다. 노동자밀집지역에서 후보전술도 고민해볼만 하다. 다만 대중조직 내부 역학관계가 있으므로 참고는 해야겠지만, 내부에서 정치사상의 자유 등 제기할 지점이 있다면 그런 수준에서 대응하는 게 맞다.

이광┃결국 출범할 노동자계급정당이 정치를 잘해야 한다. 민주노총에서 선거 논의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결국 그들의 책임이 아니고 힘이 없다 하더라도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세력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설사 잘못된 방침이 회의를 통해서 관철된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격렬하게 문제제기하며 논쟁을 벌여 무엇이 문제인지 대중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과정이 정치다.


[진보정당운동 실패 원인과 해결방향]

이종 “스스로 좌표이동하며 포섭돼갔다”

이광 “민주노총 따라 휩쓸리면 안돼”

정 “쌓아놓은 자산마저 없애버렸다”

김 “평가 속에 극복 대안 나올 것”


진행┃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으로 시작한 지난 20년간의 진보정당운동이 실패했고,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과 해결방향에 대해 말씀해 달라.

이종┃제일 큰 부분은 야권연대다. 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은 여전히 스스로 서지 못하고 있는데, 진보정당들이 스스로 좌표이동해가면서 포섭돼가고 있다. 또 민노당이 출발하며 내건 ‘일어나라 코리아’나 사회연대전략의 문제, 민주노총이 양날개론을 펼치며 배타적 지지방침을 가진 것 등의 문제가 있다. 그런 문제는 지금 정의당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의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스스로 좌표를 설정하고 정치적 관계설정을 하지 못했다.

이광┃한국 정치구조가 반공분단체제이다 보니 정당이 제대로 서지 못했고 역으로 민주노총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새로운 노동자계급정당은 과거 민노당이나 통진당처럼 민주노총 방향에 따라 휩쓸려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거꾸로 민주노총을 견인해내고 한계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대안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부터 이념적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 다만 최대한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내기 위한 유연하고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기회와 조건이 주어진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노동자계급정당의 기본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한 최대한 활용했으면 한다.

정┃우리가 왜 실패했는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탄압받아서 와해되는 거다. 물론 통진당 해산은 종북문제 등 헌재의 탄압으로 규정할 수 있지만, 도리어 일부는 대안이 없어서 진보정당으로 합류하고, 일부는 완전히 떨어져나가고, 일부는 부르주아정치로 가버렸다. 그런 흐름으로 보면 우리가 탄압받아서 와해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전히 대중을 장악하지 못하고 소수화 돼서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금 깃발 들고 나가야 할 사람들 역시 여전히 같은 조건에서 출발해야 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역량을 투자해야 권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예단할 수는 없지만 통진당 문제 등 겹치며 대중적 환멸까지 더해져서 더욱 어려워졌다.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민주노총이 총파업이다 총궐기다 투쟁 몇 번 했다고 바뀔까? 민주노조운동에 대해서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흐름이 쉽게 걷힐까? 어려 문제가 맞물려 있다. 혹자는 이전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자고 하지만, 나는 자산이라고 칭하기조차 어렵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민노당이나 통진당 거치면서 그간 쌓아놓은 자산마저도 다 말아먹었다. 사실 백지상태, 아니 폐허에서 다시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김┃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이나 통진당이 가지는 의미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적으로 봤을 때 크다. 그래서 실패가 더욱 아쉽다. 원인은 분열이고, 그 분열의 원인은 대중으로부터의 이탈이다. 그간 진보정당운동을 평가하면서 많이 이야기했듯 의회주의, 패권주의 문제다. 명망가들이 무원칙한 권력지향으로 대중을 무시하면서 대중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지지받지 못했다. 당원대중들을 당의 주인으로 세우지 못하고, 동원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돈 내는 집단으로 치부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어떻게든 그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에서 대안이 나오지 않겠나.


[노동자계급정당에 대한 바람]

정 “당명만큼은 대중과 교감할 수 있게”

김 “현장에서 더욱 적극적 활동을”

이광 “당내 민주주의 구현에 힘쓰길”


진행┃대체로 지금 시기에 노동자계급정당이 필요하지만,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과제도 많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이 당이 어떻게 가야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변혁운동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덧붙여 출범하는 노동자계급정당에 대한 바람으로 마무리 발언을 해 달라.

정┃하루 이틀로 지지나 권위가 생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쉽게 꺼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당명을 고민했으면 한다. 솔직히 사회주의당이라고 하면 민주노총 선진활동가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다. 이 정도로 주체 역량이 떨어져있다는 이야기다. 어려운 조건에서 기어이 그 길을 가겠다면 어마어마한 힘이 있던가, 아니면 대중들과 교감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당명은 신중하게 고려했으면 한다. 당비도 중요하다. 세상을 뒤집고자 하는 투사들이 집결한 정당이라면 최소한 수입의 10~20%는 내야 한다. 지금 힘이 없는 조건에서 어쨌든 활동하려면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헌신과 열정과 고민이 따라야 한다.

김┃충분한 실천을 통해 대중들의 요구로 건설한 당이 오래갈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그림 그려 와서 가자고 하는 당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단결과 실천으로 가야 한다. 기왕 시작한 만큼 제대로 해서 또 다른 실패의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공했으면 한다. 다만, 현장에서 추진위가 잘 안 보인다. 물론 당원이 많지 않고 어려운 조건이겠으나 현장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 달라.

이광┃출범할 정당은 노동자계급정당일 뿐만 아니라 변혁정당이다. 이 사회의 가장 급진적인 정치세력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 두 가지 의미가 갖는 긴장을 변증법적으로 잘 풀어나가야 유의미한 정당이 될 것이다. 모든 수단과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면 한다. 제도와 비제도의 구분을 두지 말고, 자신의 정강정책 실현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되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변혁운동의 진전에 복무해 나가는 냉철한 정당이 되어야 한다. 또한 당내 민주주의를 통해 자기 당에 대한 애정을 갖고, 당원들이 우리 당은 이런 당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오랫동안 준비해 왔는데, 어쨌든 출범키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혹시라도 보탬이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하겠다.

이종┃말씀하신 회원 자격, 명칭, 등록 여부 등 계속 고민해온 부분이다. 당을 띄우면 뭐가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그밖에도 제기해주신 내용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충분히 토론해 보겠다. 안 가본 길이기에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제기해 달라.

진행┃바쁘신데 와주셔서 고맙다. 1월31일 창당대회에 와서 축하해 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도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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