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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20, 사회주의가 필요했던 순간들


‘공정성’이 잠식한 

청년 담론

세 가지 사건으로 돌아보기


이선준┃학생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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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1. ‘내돈내산’, 언제까지?


코로나 확산과 함께 2020년 첫 학기부터 각급 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됐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 과정에서 수업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며 ‘등록금 반환’을 요구했고, 이는 대중운동으로도 발전했다. 결국 정부여당은 등록금을 일정 부분 반환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기로 하고 여기에 약 2,718억 원의 예산을 할당했다. 건국대에서 처음으로 부분적 등록금 반환이 이뤄지는 등, 투쟁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 등록금의 약 10%를 한시적으로 환불받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돈 낸 만큼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소비자로서의 공정성에서 운동이 그 이상으로 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에 대학 측이 높은 등록금을 정당화하던 논리를 거꾸로 그들에게 들이대며 등록금 반환 요구의 무기로 사용한 것은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교육의 상품화(양질의 교육을 받으려면 그만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한계 역시 분명했다.


결국 ‘등록금 반환’이 드러낸 교육 문제의 기저에는 고액 등록금이 상징하는 교육 상품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교육은 사회를 유지하고 다음 세대를 재생산하는 공적인 책임을 갖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적으로 소유된 대학과 상품화된 교육은 그 공적인 성격을 지우고 수익 논리로 채워버린다.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으려면, ‘공정한 지불’이 아니라 ‘공공적 책임’이 필요하다. 이렇듯 공적 권리로서의 교육을 위해, 무상교육과 더불어 대학의 국‧공영화를 제기해야 한다.



#2.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올해 6월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보안요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문제도 큰 이슈로 떠올랐다.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올 정도로 반발이 컸고, 특히 ‘시험도 보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경제위기 속에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청년세대의 분노가 담겨있다. 정규직 일자리는 경쟁의 승리자들만 누리는 특권이 됐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 전면화 이후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경쟁 이데올로기를 체계적으로 내면화한 청년들은 이것을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발화하게 됐다. 특히 극심한 취업난에 빠진 청년‧학생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공기업 혹은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면서 경쟁이 더욱 과열됐는데, 이 역시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논란의 대상으로 부상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안정적인 삶을 빼앗긴 청년세대의 불만이다. 애당초 정규직 일자리 자체를 대폭 줄이고 필요한 업무를 외주‧하청으로 돌리면서, 한편으로는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취업 경쟁을 부추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과 멸시를 양산한 이 체제가 청년과 비정규직 모두를 피해자로 만듦과 동시에 분열시킨다. 우리는 ‘왜 꼭 특정한 소수만 안정적인 삶을 누리도록 허락받아야 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사회적-공공적으로 책임지라는 요구로 연결할 수 있다. 우리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물론이거니와, ‘국가 책임 기본일자리’를 제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놓치지 않을 거예요’


지난여름 코로나 확산 와중에 벌어진 의사 단체의 집단행동 역시 공정성을 화두로 내건 사태였다. 여기에서 주로 전공의와 의대생 등 젊은 층이 적극적인 행동을 벌였는데, 이들은 특히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에 크게 반발했다.


사실 이들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정부 대책은 (정부가 내세운 명분과 달리) 공공의료 확충과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기존 대형 사립병원-의료자본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조차 자신들의 이익을 해친다고 여긴 의사들은 ‘공정성’을 내세워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이 내세운 공정성은 자신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논리 그 자체였다. 시험 성적이 가장 높아야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조건은 그들에게 경쟁의 승리자라는 지위를 부여했고, 이들은 ‘의사만이 의료의 주체’인 듯 주장했다. 경쟁의 승리자이기에 자신들의 이익은 공정하며, 국가의 간섭으로 그 이익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기득권 수호 논리로서의 자본주의적 공정성이 가장 강력하게 표출된 사건이었다. 동시에, 진정한 의료 공공성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교육기관과 병원 등 의료시설과 더불어 의료인력까지 완전히 공영화-공무원화함으로써, △의료인력 양성과 훈련, 배치 등을 공공적으로 책임지고 보장함과 함께 △공공의료시설을 대폭 확충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민주적 통제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비롯한 능력주의와 공정성은 바로 그 생존경쟁에 내몰린 청년세대의 분노에 기반하기에 그 가운데 합리적 핵심을 포착해야 하지만, 공정성 이데올로기가 체제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고 공적인 책임을 방기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자본주의 경제위기 속에서 생존의 문턱이 좁아질수록 ‘공정한 경쟁’이라는 환상이 커지고, 이는 체제를 유지‧재생산하는 동력 중 하나가 된다. 그렇기에, 지금과 다른 세상을 요구하는 우리에겐 자본주의적 공정성에 맞서는 사회주의적 공공성이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가 필요한 것이다. ‘공정성’으로 표출된 청년들의 불만과 균열 속에서, 우리는 체제에 맞선 대안을 제시할 틈바구니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