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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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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못 한 날 1,811일

사람대접받게 해 준 민주노조, 포기할 수 없다


김순자 민주노총 울산본부 울산과학대 지부장

조돈희 울산과학대 연대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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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6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이래 5년의 시간이 지났다.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 교내 식당에서 밥도 먹지 못하게 하는 차별에 분노하며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은 민주노조로 뭉쳤다. 하지만 학교와 업체는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달려들었고, 2015년 청소노동자들은 해고당해 쫓겨났다. ‘고용 승계를 포기하면 다른 데서 청소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는 회유도 많았다. 하지만 이 노동자들은 ‘우리를 사람대접받게 해 준 민주노조를 포기할 수 없다’며 지금까지도 길거리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지역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연대도 멈추지 않는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파업 5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변혁정치>가 울산과학대지부 김순자 지부장과 지역 연대모임을 이끄는 조돈희 동지를 만났다.



“최저임금 노동자는 외식 한 번, 옷 한 벌 맘 편히 못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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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자 

울산과학대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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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희 

울산과학대 연대모임 대표



오는 6월 16일이면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파업한 지 5년이 된다. 파업 당시 요구와 5년간의 투쟁 과정을 말씀해달라.


5년 전인 2014년 6월 16일 파업에 돌입했었다. 울산과학대에는 우리 말고도 직영 청소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상여금 1,000%(10년이 지나면)에 월급 또한 저희보다 많이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당시 저희는 상여금 100%에 월급은 한 달 꼬박해봐야 10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일은 직영 청소노동자보다 더 많이 하는데, 차별을 하더라도 이건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저희 조합원 대부분은 가장이다. 월급 100만 원 가지고는 빚만 지고 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희는 상여금 300%, 시급 1만 원이라는 요구안을 내걸고 교섭을 시작했다. 교섭을 7~8회 진행하는데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부산 지노위에도 갔다 오고, 다방면으로 뭘 해봐도 학교의 입장은 ‘울산과학대가 청소노동자 월급을 전국에서 제일 많이 준다’며 ‘여기보다 많이 주는 데 있으면 말해 보라’는 식이었다. 많이 줘봐야 시급 10원, 20원 더 많은 정도인데 말이다.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조합원 회의를 거쳐 마지노선으로 시급 6천원, 상여금 100% 인상을 최종요구안으로 교섭에 임했다. 그러나 사측은 시급은 올려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는 전면파업을 하겠다고 사측에 경고했지만, 학교측과 사측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2014년 6월 16일에 라면 상자 등을 본관 바닥에 깔고 파업에 돌입했다. 이렇게 본관에 눌러앉아 있으면 총장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본관에 눌러앉았는지’ 업체를 불러 대화의 장을 만들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희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2014년 10월 20일 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 본관 로비에서 첫 강제집행을 당했다. 2015년 5월 18일에는 7개월 만에 두 번째 강제집행을 당했고. 그날도 비가 억수로 내렸는데, 11일 동안 안 나가고 버텼다고 1인당 330만 원씩 추가 벌금이 내려졌다.


두 번째 강제집행 소식에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동지들과 지역 동지들이 달려와 줬고, 바로 규탄 집회를 열어 세 번째 농성장을 설치했다. 그런데 세 번째 농성장을 칠 때는 두 번째로 칠 때와 달리 교직원과 경찰들이 방해하면서 심한 몸싸움 끝에 겨우 농성장을 차렸다. 그러고는 바로 학교에서 2015년 5월 30일부로 업체와의 계약해지를 해버렸다. 계약해지가 되면서 5월 말로 저희는 해고가 된 거다. 현재 정문 옆에 있는 다섯 번째 농성장까지 밀리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탄압과 수모를 다 당했다.



울산과학대는 과거 2007년 첫 파업에 나서 승리했다. 옛날을 생각하면 누구도 이렇게 장기파업이 될 줄 몰랐다. 장기파업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2007년 파업 투쟁 승리로 자신감이 넘쳐 있었고, 790원 시급인상 정도는 따낼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다. 사측은 노조 길들이려고 칼을 간 것 같은데. 저들은 적당히 타협하지 않은 민주노조를 깨겠다고 작심을 하고 덤빈 거라고 본다. 저들이 악랄하게 나오니 우리도 자존심을 걸고 민주노조를 지키려고 한 거고.


최저임금 투쟁을 넘어서는 생활임금 투쟁을 한 것도 저들에게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대부분 최저임금 사업장들이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에 얽매였는데, 우리는 생활임금을 제기하면서 투쟁했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문화생활 꿈도 못 꾼다. 차를 하나 사서 굴릴 수 있나, 외식을 제대로 할 수 있나, 괜찮은 옷 하나라도 맘 놓고 살 수 있나. 그래서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 쟁취 투쟁을 제기한 거다. 그래서 최저임금 1만 원도 제기했고. 우리가 전국의 대학 청소노동자 선봉에서 싸웠고, 아마 이 투쟁이 더 커지는 게 부담스러웠을 거다. 또 다른 하나는 울산과학대 노무관리를 현대중공업 노무팀에서 하는 것 때문에(울산과학대 재단이 현대중공업그룹이다) 장기화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이것 때문에 풀리지 않은 측면도 있을 거다.



사측과의 교섭 중에 무시하기 어려운 제시안이 나온 적이 있다고 들었다. 사측 제시안이 무엇이었고, 왜 거부하고 투쟁을 선택했는지 말씀해주신다면?


무시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사측이 마지막 교섭에서 제시한 것은 시급 5,410원과 특정 조합원의 해고였다. 해당 조합원하고는 도저히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 당시 최저임금 사업장 중 최저시급보다 200원 많은 사업장은 거의 없었을 거다. 그래도 우리는 5,500원 이상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조합원의 해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민주노조에서 조합원을 해고한다는 데 어떻게 동의하나?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조합원들도 잘했다고 했고.



“보상금 받고 끝내라고 할 때마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그랬죠.”


파업 투쟁 5년 동안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원내대표, 송철호 울산시장 등 정치권의 중재 시도가 있었다. 그 내용은 무엇이며 왜 수용하지 않고 파업 투쟁을 선택했는지?


처음 투쟁할 때 동구청장이 한국당의 권명호였다. 그때 동구청 경제진흥과장이 와서 ‘구청에서 일하면 안 되겠냐’며 은근히 떠보더라. 당연히 거부했다. 그러고 나서 민주당 구청장이 나왔다. 그런데 그들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어 했다. 우원식하고도 와서 ‘다른 데로 일하러 가면 돈은 자기가 해보겠다’고도 했다. 그때도 얘기했다. ‘우리가 돈 몇 푼 받으려고 지금까지 있었냐. 우리는 그렇게 못한다. 전국에서 이 많은 동지들이 이 투쟁에 몸도 대고 돈도 댔다. 그 동지들이 우리가 돈 받아 가라고 연대한 거냐. 우리가 이렇게 가버린다면 그 동지들을 배신하는 거고, 그러면 안 된다. 우리는 분명히 합의서가 있다. 이거 지키라는 거다. 우리가 뭐 그리 큰 요구가 있나. 우리 복직시키라는 거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지역의 일부 동지들도 그랬다. ‘더 일하기 편하고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는데 가면 되지 않느냐’고. 지난 5년간 대학도, 한국당도, 민주당도, 지역의 일부 활동가들도 우리에게 ‘울산과학대로의 고용 승계가 어려우니, 구청이나 시청 등 다른 곳으로 고용 승계하고 일정하게 보상금을 받으라’고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그럴 때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우리의 의지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결국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건데, 울산과학대 조합원 평균 연령이 67세다. 어찌 보면 싸우기 참 어려운 나이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고령의 조합원들이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울산과학대지부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란?


민주노조는 우리에게 자존심을 찾아줬다. 하루에 9시간 일하면서 밥도 못 얻어먹던 개만도 못한 처지에서 드디어 사람대접을 받게 됐다. 대학의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을 때 느꼈던 희열은, 그간 천대를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르실 거다. ‘밥 데워 먹지 마라, 찬반냄새 난다, 딴 데 가서 먹어라’ 등등. 게다가 매일 1시간씩은 공짜노동을 해야 했고, 무보수 당직까지 섰다. 싸워서 공짜노동을 없애고, 3만 원의 당직 수당도 받게 됐다. 물론 강제로 당직을 서지 않아도 되고. 민주노조는 우리를 당당한 노동자로,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줬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조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알게 됐다. 우리도 대충하고 갈 수도 있었다. 살 날 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사람들 아닌가. 우리 자식들, 손주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 민주노조 지키는 거다. 그거 아니면 과연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끔은 ‘청소 아무 데서나 좀 하다가 말면 되지’ 이런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누군가는 바로 해야지,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해야지’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안 그러면 민주노조가 결딴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리고 전국의 모든 청소노동자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 민주노조 제대로 지켜내고 전국의 청소노동자들이 다 함께 투쟁하는 걸 하고 싶었다. 청소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 일반노조연맹, 여성연맹, 공공연대노조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공동투쟁이 잘 안 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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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는 우리를 당당한 노동자로,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줬어요.”


장기파업으로 임금이 전혀 없을 텐데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조합원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2015년 6월 1일 해고돼서 처음에는 실업급여로 7~8개월 받으며 생활하다 이마저도 끊겼다. 한참 막막할 때 2017년 “울산지역 연대기금”에서 투쟁기금을 지원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떤 달은 20만 원, 어떤 달은 30~40만 원 이렇게 일정하지 않게 받다 보니 생활하기가 힘들었다. 지부장으로서도 조합원들 얼굴 볼 낯이 없었다. 그렇게 지원받다가, 김대식 동지라는 분이 울산연대기금 대표가 된 후 ‘투쟁지원금만큼은 일률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며 2018년은 조합원 1인당 60만 원씩, 2019년부터는 최저시급 인상으로 70만 원을 지원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조합원들 건강 상태는, 왕언니가 2018년 추석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은 회복 중이고. 한 조합원은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수술을 받았고, 다른 조합원들만으로도 종합병원 차릴 수준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리고 내색은 하지 않고 있어도 정신적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다.



5년간 장기파업을 유지할 힘 중의 하나는 다양한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모범적인 연대 사례를 소개해 주신다면?


2015년부터 매주 목요일 1박 농성장 지킴이 연대를 해주고 있는 현대자동차 열사회 동지들, 2016년부터 매달 둘째 주 일요일 조합원들 건강 체크 연대를 해주고 있는 새물약사회 동지들, 2017년 팟캐스트에 울산과학대지부 사연을 보내 전국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투쟁기금 연대를 만든 이유준 동지, 농성장 연대자모임 대표를 자임한 조돈희 동지, 매주 화요일 음악회를 책임지고 있는 정우석, 심온, 정대준, 오규영, 손기찬 동지, 매주 수요일 농성장을 영화관으로 변화시켜주는 송연수 동지.


기름값 절약과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농성장을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택시 동지들, 중요한 시기마다 몸빵과 재정을 후원한 현대차 공동행동 동지들. 그리고 교수의 강요 때문에 청소노동자 탄압에 동원됐었다고 농성장에 찾아와 눈물로 사과를 하고 투쟁에 함께해준 과학대 흥사단 장연실 학생. 학교 말만 잘 듣고 청소노동자를 탄압했으면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었을 텐데, 울산대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함께 해준 울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송식 학생. 과학대 투쟁에 고등학생도 함께하겠다며 많은 고등학생을 조직해서 연대를 왔던 이은선 학생. 그 외 수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과학대지부의 승리를 위해,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지역과 전국의 동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투쟁이 너무 길어져 저희의 여건상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나가지 못해 많이 죄송하다. 그래서 저희의 투쟁이 잊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다. 하여튼 저희 투쟁이 많이 알려져 함께 걱정하고 함께 싸워 저희가 꼭 복직해서 민주노조 제대로 지켜내고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 삶이 언제까지 주어질지 모르지만, 주어지는 그 날까지 노동조합 활동을 계속할 것을 다짐한다.



■ 인터뷰 정원현울산 / 정리 = 전인표울산



* 울산과학대지부 투쟁기금 후원계좌

농협 352-1022-2325-33 (서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