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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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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2.18 19:00

이슈┃2020, 사회주의가 필요했던 순간들


생존을 위한 대안

국유화


고근형┃서울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코로나19’라는 표현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지난해, 이른바 ‘R의 공포’를 알리는 목소리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들려왔다. 여기에서 ‘R’은 ‘Recession’, 즉 경기침체를 뜻한다. 2008년 대공황 이후 10년이 꽉 찬 상태에서, 한국만 하더라도 성장률 저하와 기업이익 하락, 수출 및 제조업 생산의 감소, 기업‧가계부채의 증가 등 위기의 징후가 잇따라 드러났다. ‘2020년에는 경기 사이클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감은 맑스주의자들보다 도리어 경제신문과 금융시장에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재생산되기도 했다.


실제로 2020년이 되자, 예상치 못한 변수였던 감염병 사태로 경기위축은 훨씬 더 급격하게 진행되며 가파른 하향곡선을 만들어냈다. 이는 수많은 결과를 야기했지만,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두 가지, 즉 기업-산업 구조조정과 자산시장 과열(혹은 투기열풍)에 주목하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코로나와 겹친 경제위기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며 노동자민중의 생존위기를 격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열심히 일하며 살아봤자 희망이 없다’며 주식과 부동산 등으로 몰려든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위기를 

국유화의 기회로 전환해야


2020년은 그야말로 구조조정의 해였다. 올 7월 금속노조가 집계한 구조조정 사업장만 100곳이 넘었다. ‘신산업’으로 분류되는 반도체나 전자부품 업종을 제외하면, 이미 2018년부터 제조업 부문 생산은 감소하고 있었다. 재무구조 역시 점점 취약해지면서, 가령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절반가량이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상태에 빠졌다. 이 와중에 올해 경제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이 겹쳐서 닥치자, 항공산업을 필두로 두산중공업-쌍용자동차-대우버스-한국게이츠-롯데마트 등 여러 업종의 기업에서 무급휴직부터 대량해고, 폐업, 인수합병 등 온갖 형태의 구조조정이 벌어지거나 예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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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동자(변백선)]



정부는 이 가운데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40조 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한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나항공과 두산중공업 등 굵직한 대기업에는 3조 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쌍용자동차에도 2천억 원의 산업은행 자금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한사코 국유화만은 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국내 13위 재벌그룹 한진에 8천억 원을 추가로 쥐여주면서까지 인수합병을 밀어붙이고 있고, 두산중공업은 총수일가의 경영실패를 메우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빼갔던 잘못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돈만 퍼준 채 여전히 두산그룹 박씨 일가 손에 내맡겼다. 쌍용자동차 역시 모기업인 인도 마힌드라 자본이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사업 철수를 천명했는데도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구조조정이 몰아친 만큼, 2020년엔 국유화 요구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했다. 공적 자금 투입으로 기업과 자본가는 회생할 힘을 얻을지 모르겠으나, 소유와 경영이 여전히 사적 자본의 손아귀에 있을 때 결국 그에 따른 책임과 피해는 임금삭감이나 해고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공식 실업자만 100만 명 수준으로 치솟은 지금(통계청, <2020년 11월 고용동향> 기준), 자본이 곳곳에서 자행하는 구조조정을 그대로 두고서는 정부가 단기 알바 일자리를 아무리 많이 만든다 한들 안정적인 고용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만약 공적 자금 투입 기업은 물론이고 구조조정 기업에 대해 국유화를 단행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지키고 확대하는 한편, 해당 기업을 사회 전체의 공익에 복무하도록 운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자동차 자본에 막대한 지원금과 투자 혜택을 줄 게 아니라, 그 자원으로 폐업하거나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 부품사부터 완성차까지 공공기업으로 전환해 친환경차를 생산한다면? 또는, 전력 생산 부문에 깊숙이 침투한 에너지 재벌에 계속 이윤을 퍼줄 게 아니라, 두산중공업 같은 발전소 건설 기업을 국유화해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국가 차원에서 확대한다면? 자본이 마치 천부적 권리라도 되는 것처럼 내세우는 소유권과 경영권의 장벽을 넘어선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 구조조정의 위기를 국유화의 기회로 전환시킬 투쟁을 만들어낸다면 말이다.


비단 2020년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년엔 경기가 다시 좋아질 테니 그때까지만 참자’는 말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일단 언제가 될지 모를 그 ‘좋은 날’이 오기까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정부가 코로나 긴급 대응의 일환으로 막대한 기업부채를 유예시켜준 한편 대출은 더 늘어났기 때문에 기업 부실 규모는 그대로이거나 확대됐다. 즉, 코로나 사태가 걷힌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기저효과는 나타나겠지만) 경제 동력에 대한 리스크는 줄어들지 않은 채 위기를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불안정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사적 자본에게 고용안정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아직 폐업이나 정리해고 같은 극단적 상황에 치닫지는 않았더라도 이렇게 부실을 누적하고 있는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에 맞선 국유화 요구는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내년에도 더욱 크게 제기되어야 한다.



왜 우리는 영혼까지 바쳐야 하나


이렇듯 올해 실물경제가 고꾸라진 반면 유독 자산투자, 특히 주식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이미 증권사 신용융자잔고(개인들이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돈)는 20조 원에 육박하고 있어 연초의 3배가량으로 부풀어 올랐고, 대출 위험이 너무 커진 나머지 오히려 증권사 쪽에서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지는 상황이다. 올해 주식시장에 유입된 개인 자금이 100조 원에 달한다거나, 2030세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신규 주식투자 계좌 개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등 개인들의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은 올해 금융시장을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코로나까지 겹친 경제위기 시대, 이제 누구도 ‘열심히 일해서 벌어먹고 산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가뜩이나 안정적인 일자리가 모자라던 차에 앞서 확인했듯 올해 구조조정으로 기존 일자리마저 계속 사라지고, (바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인 주거공간 확보조차 집값 폭등으로 물 건너가는 지금, 대안이 없는 이들에게 투기는 더 이상 죄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조건 오른다’는 믿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GDP 총액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이른바 ‘버핏지수’로 불리며, 증시 거품을 판단하는 징표 중 하나)이 100%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지금, ‘누군가 나보다는 비싸게 사주겠지’라는 위험한 기대가 가공된 환상을 부추기면서 실물경제와 자산가격의 괴리는 극에 달했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시한폭탄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가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빚을 내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의 박탈감과 자산격차도 커진다.


이 와중에 ‘기본소득’을 넘어 ‘기본자산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즉, 모든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일정한 액수의 자산을 주되 일정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팔지 못하게 해서 자산을 키운 뒤, 후에 이를 각자의 교육비 등 각종 지출에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취지와 별개로, 이는 전국민을 금융시장에 더욱 강하게 종속시킬뿐더러 금융위기에 대한 노출위험 역시 높인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앞서도 잠깐 언급했던) 국가가 책임지는 (국유 혹은 사회화된 기업의) 양질의 일자리와 더불어, 개인의 생애주기에 필요한 모든 필수서비스의 공영화다. 주택은 물론이고 보육‧교육과 의료 등 지금까지 각자가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감당해야 했던 부문에서 국‧공영화를 통해 별도의 개별 지출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언제, 얼마나, 그리고 누가 뒤집어쓰게 될지 알 수 없는 거품폭탄으로 수많은 사람과 자원을 쓸어 넣는 것보다 이게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지 않겠는가.



집, 시장 말고 ‘사회주의’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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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확대되는 투자 열풍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부동산 문제는 2020년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이 다주택자라는 이유로 사퇴한 게 불과 넉 달 전의 일이다. 특히 지난 7~8월의 집값 상승과 임대차 3법, ‘영끌’ 논란과 전세난 심화 등 올 한해는 부동산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국민의힘 국회의원 윤희숙이 ‘나는 임차인’이라면서 임대차 3법을 비판한 것도 화제가 됐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 임대인들이 내놓는 전세물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무주택자의 보금자리 마련이 더 어렵게 될 것’이라면서 ‘부동산 문제는 시장에 맡기자’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 협력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윤희숙 의원이 다주택자라는 사실은 잠시 제쳐두자. 부동산을 시장에 맡기자고? 투기수익으로 얼마를 벌든, 임대료를 올려서 사람들이 쫓겨나든 말든 시장에서 벌어진 일에 상관 말자는 소리다.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두에게 집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집값을 조절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공급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집값이 내려가지 않겠느냐고? 2008년 이후 10년간 공급된 주택 490만 호 가운데 250만 호가 다주택자의 손에 들어갔다. 그 결과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무주택자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육박한다. 부동산 시장이 교란된 게 문제가 아니라, 시장 때문에 집이 교란되어서 문제인 셈이다. 집을 시장에 맡길 게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잘하고 있을까. 결코 아니다. 24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말해주고 있듯,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뜯어보면 과연 집값을 잡을 생각이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종합부동산세 인상률은 집값 상승률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도 계속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집값은 어느덧 자산의 상징이 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국민순자산의 76.2%가 토지와 건물이다. 즉, 집값의 하락은 자산이 증발하는 것과 같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집값이 올라도 문제지만, 떨어져도 문제인 셈이다. 못 믿겠다면 지금 당장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부동산 관련 자료를 아무거나 찾아보자. 부동산 정책 목표는 집값의 하락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 즉 현상유지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근본적 한계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집값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무주택자가 집을 구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월 200만 원 받는 월급쟁이가 5억 원짜리 집을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을 모아야 한다. 물론, 그 20년간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가계부채는 1,682조 원인데, 한 분기 만에 주택담보대출은 17조 원이나 올랐다.


그래서 변혁당은 주택을 시장이 아닌 공공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정부나 공공이 토지와 주택을 소유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하면 된다. 저렴한 임대료와 양질의 시설, 그리고 원하는 기간만큼 거주할 수 있는 공공주택을 필요한 모든 시민에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토지와 주택의 국‧공유화가 꼭 필요하다.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소유의 집부터 공공주택으로 전환해나가면 되고,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에서 주택을 다루는 방식이다. 문재인조차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말했다. 진정 이를 실현한다면, 필요한 것은 사회주의다.



* <변혁정치> 112호(2020년 9월 1일 자) 기사 “구조조정, 지금 여기에: 위기로부터 전망을 형성하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