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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노조 근처에도 안 갔어요

블랙리스트 면접 실태조사에 응했던 어느 하청노동자의 말

 

권미정투쟁연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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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간 금속노조와 조선하청대책위, 마창산추련, 거제새터가 함께 진행했던 조선업종 비정규직 블랙리스트실태조사 보고 및 대안마련 토론회가 97일 있었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926명의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가 설문조사로 참여했고, 면접조사는 16명이 응해주었다.

설문조사 참가자 중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답변한 노동자는 516명이고, 그중 본인 또는 동료가 경험했거나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47.67%, 사회적 현상이라고 답변한 노동자는 46%였다. 다수의 비정규직이 직간접으로 블랙리스트를 경험했고, 경험하지는 않았어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는 자본의 일상적 통제 하에 노동자들이 요주의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기를 제약하게 했다. 불만과 권리를 말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상징하는 게 블랙리스트였다.

 

특별한 노동자만 걸리는 게 아니다

산재 처리와 노조 가입에 대한 노동자들의 선택에 블랙리스트가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을 해봤다.

지난 2015년에도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했을 때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 중 59.5%가 블랙리스트 때문에 산재신청을 못하고 자비로 처리했다고 답변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산재를 당하고도 해고나 폐업, 블랙리스트 등의 문제로 산재신청을 포기한 노동자들에게 물으니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대답이 64%에 달했다.

그리고 하청노조 가입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45%의 답변자가 해고와 블랙리스트 때문이라고 했다. 업체와 원청의 탄압 때문이라는 답변도 17%에 이른다. ‘노조가 필요없다는 답변은 8%뿐이다.

흔히 블랙리스트에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노동자들 모임에 가입한 경우, 산재를 당한 동료의 증인을 선 경우, 불합리한 회사 조치에 항의한 경우, 체불임금 때문에 노동부에 진정한 경우, 시급이 맞지 않아 몇 명의 동료들이 같이 퇴사한 경우... 작업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 노동자는 모두 블랙리스트 대상이다.
직간접으로 블랙리스트를 경험한 비정규직 중 40.4%회사의 불합리한 조치에 항의해서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고 했다. ‘노동자 권리를 주장해서라는 답변이 22.6%로 두 번째로 많았다.

어떤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경험했든 취업의 제약과 어려움이 가장 큰 불이익이었음도 확인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다는 건 해고와 재취업 불가를 의미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는 물량팀이나 외주업체로 갈 수밖에 없고, 노동조건·임금·복지가 더 열악한 곳으로 떠밀리고, 조선 산업을 떠나기도 한다.

 

하청노동자 착취 중심의 구조를 유지

이번 조사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두려움이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저해해왔음도 확인했다. 블랙리스트는 결국 노동자들로부터 노동조합을 뺏는 것이 목적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는 노동조합과 접촉을 원천 차단하고, 현장의 일상적 통제와 노동자들의 개별화를 위해 활용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 자체가 불법인 것을 아는 원·하청 자본은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철저하게 왕따를 시키고 업무 능력운운하며 못 버티게 만든다. 기존에 하던 작업에서 배제시킴으로써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작업장에서의 감시는 필수다. 노동자의 인격과 존재감을 말살시켜 스스로 퇴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잔업과 특근을 못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생활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한다. 이런 불이익을 통해 노동자들을 회사의 방침과 입장에 어긋나지 않고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내쫓거나 업체를 폐업시키고, 재취업을 못하게 만들어서 권리와 항의는 노동자들의 것이 아니게 만든다.

블랙리스트는 하청노동자 착취구조의 유지를 위해 노동조합을 뺏는 무기로 쓰인다.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의 태도, 성향, 행동을 모으고, 하청업체간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원청업체는 그 정보를 원청사의 전산망에 축적하여 출입증 발급이라는 무기로 정보의 적용 권한을 휘두른다. 하청업체가 꼭 채용해야겠다고 아무리 얘기한들 원청은 출입증을 내주지 않는다. 조선소의 다단계 하청구조는 블랙리스트를 운용하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국가기관은 협조하고 방조하며 조선소 블랙리스트를 유지시켜 준다.

이처럼 조선소 블랙리스트의 폐해는 무궁무진하다, 피해자들이 널려있고 그들이 살아있는 증거다. 누군가는 조선소 블랙리스트를 없애기 위해 노동조합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블랙리스트를 없애야만 가능하다는 꼬리물기 답변도 나온다.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원청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철저하게 진상조사하고 처벌을 강화하고 일상적 감시기구도 만들고, 하청노동자 쟁의행위 시 대체인력투입을 막는 것도 필요하다. 그 모든 것에 원청업체가 실제 사용주이며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