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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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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언택트 시대, 운동의 고민


“팬데믹은 전장이다.

코로나19 봉쇄 속 

사회운동”


번역┃기관지위원회



* 이 글은 <Journal of Civil Society> 온라인에서 2020년 8월 6일 게재된 Geoffrey Pleyers의 “The Pandemic is a battlefield. Social movements in the COVID-19 lockdown”을 축약‧번역한 것이다.



팬데믹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매주 이어지던 집회들이 갑자기 중단됐다. 몇몇 국가에서는 언론의 관심이 온통 코로나에 쏠린 점을 이용해 활동가들을 침묵시키거나 비판을 검열하고, 봉쇄 조치라는 미명하에 언론을 통제하기도 했다. 사회운동이 설 자리는 일순간에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사회운동은 오히려 이 기간에 특히 활발하게 진행됐고, 자본가들과 정부, 혹은 반동 세력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그간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실천 양식에도 주목함으로써, 코로나 와중에도 사회운동이 왜 활발히 벌어졌다고 주장하는지 보여줄 것이다.



봉쇄 속의 사회운동


봉쇄 기간에 활동가들은 그저 사태 완화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이들은 다음 5가지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시위: 코로나가 불평등을 비롯한 정부의 각종 문제점(긴축과 공공의료 축소)을 드러내면서 몇몇 국가에서는 집회 금지를 뚫고 가두시위가 재개됐다. 5월에는 예루살렘, 아테네, 산티아고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광장시위가 벌어졌고, 홍콩에서도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특히 레바논, 에콰도르, 칠레에서는 부패와 긴축 등의 문제로 정부와 권력자들에 맞선 저항이 다시 터져 나왔다.


작업장 행동과 파업: 불안정 노동자나 ‘필수노동자’로 지정된 이들에게 재택근무는 특권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봉쇄 기간에도 노동자들은 보호 장구 부족과 저임금에 항의하며 파업 등 행동에 나섰다. 미국에선 작업 중지가 거의 매일 벌어졌는데, 이들 대부분은 미조직 노동자였다. 세계 각지에서 배달 노동자 파업이 잇따랐고, 프랑스와 뉴욕에서는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했다. 홍콩 의료 노동자들은 5일간의 역사적 파업에서 승리하면서 앞으로 홍콩 투쟁의 주도적 역할을 맡을 노조 운동의 새 흐름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대: 이 시기에 대중운동과 풀뿌리 조직, 그리고 시민들은 상호부조와 필수품 공급 등의 연대를 주도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지역 시민사회 조직이 국가가 외면한 이들과 함께 자율적 연대를 건설해서 홈리스를 위한 주거 제공, 빈민가에서의 감염 진단 및 의약‧식료품 배급,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조성 등에 나선 점이다. 이들은 시민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공동체를 재생시킴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첫발을 내딛고 있다.


정책 감시: 사회운동에 함께하는 전문가‧지식인들은 코로나 확산이 불평등과 깊숙이 연결돼 있으며, 공공병원‧주택에 대한 긴축이 파국적 결과로 나타났음을 밝혀냈다. 또한, 미국의 경우 무려 2조 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이 가운데 공공서비스 지출은 9%에 불과한 반면 대기업 지원은 5천억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 등을 지적하고, ‘대안적 부양책’으로서 기업 이윤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생태적 전환에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교육과 정치화: 바이러스와 함께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판을 치면서, 대중교육 활동의 중요성도 커졌다. 대중매체 활동가, 아나키스트 세력, 노동조합과 상호부조단체들은 바이러스와 감염 예방 등에 관한 정보를 생산하고 퍼뜨렸다. 이는 가령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코로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데 맞서 특히 빈민촌 거주자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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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의료 노동자들이 지난 2월 파업에 돌입한 모습. [사진: (위) China Labour Bulletin, (아래) Vox]




위기의 의미를 둘러싼 투쟁


전 세계 진보적 지식인들은 팬데믹을 자본주의의 폐해와 연결 지었다. 이렇듯 역사적 정세에서 위기에 대한 해석을 내놓고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기존 질서의 옹호자들은 ‘정상으로의 복귀’를 내세워 자신들의 주도권과 전망으로 대중을 결속하려 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이와 정반대로 바로 그 ‘정상성’이 문제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사회운동은 팬데믹 이후 새로운 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양질의 삶과 노동조건, 불평등 시정과 공공의료 강화 등을 요구했다.


사회운동이 제기한 이런 주장은 활동가 그룹을 넘어 확산하기 시작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를 지배하던 경제적 도그마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축을 밀어붙이던 각국 정부는 팬데믹과 경제위기에 대응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가령, 올 2월까지만 해도 공공병원 예산 삭감을 시도하던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현재 주요 기간산업에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국유화까지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 운동은 두 가지 ‘대항 운동’에 직면했다: 바로 자본주의 엘리트 집단과 극우세력이다. 지난 2008년 세계경제위기 때 이 자본주의 엘리트들은 위기의 근원을 글로벌 금융자본의 과잉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과잉부채로 몰며 이후 10년에 걸친 긴축을 강행한 바 있다. 이번에도 세계 각국의 재정지출이 대폭 늘어났는데, 이후 다가올 부채위기는 이들에게 긴축의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극우세력의 반동도 활성화했다. 이들은 팬데믹이 절정에 달할 때도 곳곳에서 집회를 열었고, 이주민‧난민‧소수자‧빈민 등이 코로나 확산의 원인이라며 혐오를 부추겼다. 당면 위기의 의미를 규정하려는 행위자는 비단 사회운동세력만이 아닌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비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되려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제나 주요 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 확대로 귀결할 수도 있다. 애초에 쉬운 길은 없다. 코로나 사태는 대안적 미래를 둘러싼 전장이다. 이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며, 향후 수십 년간의 세계경제와 정치체제를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