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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들여 개발한 백신, 

제약 자본이 특허 독점?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은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안종호┃강원(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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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eft Voice]



백신 전쟁과 제국주의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전세계에서 7천만 명이 훌쩍 넘는 확진자가 나왔고, 15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만큼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관심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러 제약‧바이오기업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섰고, 특히 미국‧중국‧러시아‧영국 등 강대국과 초국적 제약기업들이 그 선두에 섰다. 현재 세계적으로 임상 3상에 진입하거나 이를 마친 후보 백신은 11개로, 대부분 초국적 제약회사가 개발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으로 이미 승인을 받았거나 앞두고 있어 상용화될 예정이다. 치료제로는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가 이미 긴급승인을 받았고, 미국의 릴리와 리제네론의 항체치료제가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백신 개발은 더디지만) 치료제의 경우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와 녹십자의 혈장치료제 등이 곧 상용화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렇듯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그 공급과 분배를 둘러싼 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미 캐나다‧미국‧영국‧호주‧유럽연합 등 고소득 강대국들은 선구매(입도선매) 방식으로 백신을 확보했다. 잠재성을 가진 백신 64억 회 분량이 이미 구매됐고, 추가로 32억 회 분량도 구매협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전세계 인구에 비해 백신 물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부유한 나라가 백신을 독점하면 약소국은 배제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려면 세계 인구 60% 이상이 백신을 접종해 집단면역을 달성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백신을 전 세계적으로 공평하고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하지만 강대국 중심의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는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백신 자국주의’를 넘어 ‘백신 제국주의’라 불릴 만하다.



공적자금 투입과 ‘상품화’


물론 백신과 치료제를 공평하게 분배하려는 노력도 있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지식과 기술을 세계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풀(pool), 즉 ‘코로나 기술접근 풀(C-TAP)’을 제안했다. 또한, 백신 공동 조달 및 공평 분배를 위한 국제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구성해 약 190개국이 가입했다(“코백스 퍼실리티”는 2021년 말까지 20억 회 분량의 백신을 전 세계에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이 백신을 독점하는 한편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제약기업들이 백신 공급을 장악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나 치료제가 공평하게 분배될 가능성은 낮다. 이는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과 생산, 분배가 자본주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 및 생산에는 엄청난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현재 가장 앞서 있는 모더나 백신은 공적 기관에서 개발하고 제조비용 전체를 공적자금으로 댔다. 화이자와 공동으로 개발한 바이오앤테크의 백신 역시 미국과 독일 정부가 공적자금을 지원했고,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개발과 생산도 전적으로 공적자금으로 이뤄졌다. 코로나 치료제로 최초 승인된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 역시 공적 연구기관과 공적자금의 지원을 받았다.


이처럼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백신과 치료제의 독점권은 제약‧바이오기업이 가져갔다. 국민 세금으로 개발하고 생산했는데 제약기업의 특허가 됐고, 그들의 이익을 벌어다 주는 상품이 된 것이다. 제약 자본의 이윤을 위한 상품화된 백신과 치료제는 구매능력에 따라 배분될 수밖에 없으며, 세계적 집단면역을 위한 공평한 분배는 요원할 것이다.



지적재산권 폐지와 

생산의 공공화


백신과 치료제를 공평하게 분배하려면 우선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에 근거한 특허가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전 세계가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 수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독점이윤을 위해 특허권 밖으로의 생산을 막는다. 하지만 특허권에 따른 제한 없이 복제약 생산 기술과 시설을 갖춘 곳에서도 백신과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훨씬 많은 공급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에 관한 모든 정보와 기술을 투명하게 보급‧개방해야 하며, 이를 가로막는 ‘지식재산권 협정(TRIPS)’을 폐기하거나 최소한 적용 배제해야 한다. 하다못해 TRIPS에서도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특허에 대해 예외적인 강제실시권(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음)을 허용하고 있는 만큼, 이를 백신과 치료제 생산에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팬데믹이 알려준 교훈은 전 세계 모두가 코로나로부터 안전해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일국 차원을 넘어 세계적 공공재로 전환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와 협력의 국제주의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강제실시권이든 지적재산권 폐기와 정보‧기술의 공유를 통한 생산이든 백신과 치료제의 생산과 분배 모두가 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제약기업의 독점적 이윤을 위한 상품으로 남아있는 한, 개별 국가 내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진정한 공공재로 공평하게 분배될 수 없다. 이윤과 관계없이 인류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공적으로 생산하고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생산 및 분배 전영역에서 공영화‧공공화가 필요하다.